[김필남의 영화세상] ‘엄마’라는 새로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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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을 담담히 뒤따르는 카메라. 극영화와 다큐를 넘나드는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는 신동민 감독이 앞서 ‘엄마’를 소재로 연출했던 단편영화 3편 ‘군산행’, ‘태평 산부인과’, ‘희망을 찾아서’를 모아 장편영화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평범한 가족 이야기에 머물 수 있는 영화는 닮은 듯 다른 세 편의 영화를 묶어 섬세하고 내밀한 영화 언어로 직조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먼저 1장 ‘군산행’의 엄마 ‘혜정’은 보일러가 고장 났다며 큰아들 동민에게 전화를 건다. 아들은 엄마가 신경 쓰여 집으로 가지만 엄마는 진짜 왔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것 같지만 산책을 하고, 물건을 정리하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등 여느 날과 다름없이 행동한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행복한 얼굴로 잠이 들고, 동민은 조용히 문을 닫고 집을 나선다. 2장 ‘태평 산부인과’에서도 동민은 또 엄마를 만나러 간다. 마지막 ‘희망을 찾아서’는 앞과 사뭇 다른 분위기인데 생활 속 지쳐 보이는 엄마의 모습을 다큐처럼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신동민 감독 단편 3편 ‘장편 재구성’
실제 가족 이야기 담은 에세이 영화

1~3장 ‘엄마’ 역할 배우 다르지만
연출 탓에 몰입 방해하지는 않아
감독 실제 엄마 출연 사실감 높여



그런데 1부와 2부의 ‘엄마의 얼굴’이 다르다. 아들은 같은데 배우가 달라진 데서 관객들은 혼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어색함이 느껴지진 않는다. 엄마를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가 독특해진 건 1장과 3장에서 엄마를 연기한 배우 덕분이다. 엄마 ‘혜정’은 실제로 감독의 친엄마이기도 한데, 연기 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비전문 배우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생활 연기를 펼친다. 2장의 엄마, 노윤정 배우는 조금 더 드라마틱한 엄마를 연기한다. 전남편이 중국인 여자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엄마는 어딘지 애처로운 얼굴이더니, 술에 취해 동민을 호출한 얼굴은 쓸쓸해 보인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는 신동민 감독의 실제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에세이 영화로 엄마와 아들의 관계를 사실감 있게 다룬다. 이때 영화는 어떤 사건을 중심에 두고 흘러가지 않는다. 대사로 상황을 설명하기보다는 이미지로 보여준다. 어떤 영화는 서사의 흐름을 잘 따라가다 보면 절정의 감정을 전달받지만, 어느 영화는 단 한 장면만으로도 먹먹하다. 엄마와 아들이 나란히 앉아 짝짝이 양말을 신었다며 일러주는 말이 따뜻하며, 술 취한 엄마를 뒤따르는 아들의 모습에서 어떤 말도 필요치 않는 순간을 본다. 이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엄마가 아들 앞에서 거나하게 노래 한 곡을 부른다. 가수 정훈희의 ‘안개’와 ‘님은 먼 곳에’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인물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선택했다는 4:3의 화면비도 인상적이지만, 인물들에게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도 인상적이다. 어떤 공간에 인물들이 함께 서 있다가 사라지지만 카메라는 그들의 움직임을 쫓지 않는다. 그 자리에 멈춰 다른 인물이 카메라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이때 관객은 영화 속 흘러가는 시간을 느끼며 영화의 호흡을 따른다. 롱테이크가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3장은 카메라가 조금 거리를 두고 투병중인 엄마를 뒤좇고 있다. 이때 엄마의 옆을 말없이 지키던 아들 동민이 보이지 않는다. 엄마는 업무를 하고, 친구를 만나는 등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인다. 어느 날은 아픈 자신보다 아들을 더 걱정해 절에 올라 기도를 올린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 고민 끝에 어딘가로 전화를 건 엄마. 아들에게 투병중인 자신의 보호자가 되어달라고 말한다. 암전된 화면, 엄마의 얼굴이 사라지고 목소리도 점점 멀어진다. 모자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고 엄마와 아들을 살피는 차분한 연출이 참 오래 맴도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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