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가상세계, '멋진 신세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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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경제부 금융팀장

경제학의 기본 전제(前提) 중 하나로 ‘자원의 유한성’을 꼽을 수 있다. 유한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사용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야말로 경제학의 핵심이다. 자원이 유한하다보니 소유의 개념이 생겨나고, 내 것 네 것의 구분이 있고서야 거래도 이루어진다. 과거 공기를 무한재(無限材)라 여기던 시절, 지천에 널린 게 공기인데 덧없이 대가를 지불하고 주인 없는 공기를 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최근에야 ‘깨끗한 공기’마저도 탄소배출권으로 사고 파는 시대이지만.

메타버스 ‘무한한 가능성’ 기대 큰 반면
현실의 빈부 격차 그대로 재연될 우려도
기술 개발, 상업적 궁리에만 몰두 말고
디지털 신세계 대한 철학적 고민 시급

지구 상에 자원이 무한하다면 인류는 행복할까. 서로 더 갖겠다고 싸울 필요도 없고, 빈부의 격차도 없고, 돈을 벌기 위해 애써 지루한 밥벌이에 얽매일 필요도 없어질 테다. 허나 그런 달콤한 세상따윈 없다. 현실에선 그렇다. 그럼 가상의 공간에선? 최근 한창 뜨거운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이탈리아 모데나 공장에서 생산되는 페라리의 경우, 생산 대수가 많아질수록 그에 대한 부품과 비용도 늘어난다. 당연하다. 그러나 가상의 디지털 공간에선 ‘Ctrl(콘트롤)+C’와 ‘Ctrl+V’만으로 별다른 추가 비용 없이 무한복사가 가능하다. 이 얼마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인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의 모친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도 이처럼 멋진 신세계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달 초 홍 전 관장은 경남 합천 해인사에 ‘디지털 반야심경’을 선물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 책자를 고화질로 촬영한 뒤 이를 다시 책자로 만든 것이다. 당시 홍 전 관장은 방장 스님과의 대화에서 “디지털 기술이 너무 발전해서 이를 활용해 학예사들이 좋은 전시를 얼마든지 꾸릴 수 있게 됐다”며 “가상공간이 생기면 그 속에서 리움 컬렉션을 다 볼 수 있는 세상이 온다”고 말했다. 이미 거의 다 왔다. 리움미술관에 가야만 볼 수 있던 추사의 반야심경을 합천 산골짜기에서도 볼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홍 전 관장은 “내 것 네 것이 없는 세상이 되는 거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세상은 홍 전 관장의 낙관적인 기대처럼 흘러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은, 무한해서 내 것 네 것이 없는 자원을 굳이 유한하게 만든다. 왜? 그래야 가치가 생기고, 가치가 생겨야 그것을 팔아 이익을 남기니까. 그렇게 가치를 부여하는 기술이 메타버스와 함께 최근 한창 뜨거운 ‘NFT’(대체불가능토큰)다.

‘대체불가능’이란 단어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미 우리에겐 익숙한 개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는 대체가능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1만 원권 지폐와 당신이 가지고 있는 1만 원권 지폐를 맞바꾼다고 해서 누구 하나 불만은 없다. 그러나 내가 1년 전 산 페라리(사실 평생 페라리를 소유해본 적도 없지만)와 당신이 1년 전 산 페라리를 맞바꾼다면 분명 둘 중 한 명은 불만을 터뜨린다. 아마도 차량 관리 따윈 전혀 신경쓰지 않는 나보다는 당신일 가능성이 높다. 같은 연식의 같은 페라리지만 맞바꿀 수 없다. 이것이 현실세계의 ‘대체불가능’ 자산이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 가상세계에선 똑같은 디지털 페라리를 무한복사할 수 있다. 그래서 NFT를 이용해 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NFT 페라리에는 가치가 생겨난다. 메타버스와 NFT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나이키는 가상세계에서 판매할 신발과 옷을 제작하기 위해 메타버스 전문 디자이너를 고용했다. 멀지 않은 미래, 우리는 가상의 나이키 운동화를 사기 위해 현실세계의 노동에서 번 돈을 지불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이키뿐만 아니다. 명품기업들도 메타버스 세상으로 눈을 돌린 지 오래다. 벌써부터 가상세계의 부동산 가격이 현실세계 못지 않게 급등하고 있다. 비정한 자본주의는 현실과 가상이 따로 없다.

미래의 가상세계가 홍 전 관장의 바람처럼 현실세계의 한계를 극복한 멋진 신세계가 될지, 거대 기업들의 새로운 돈벌이 전장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기업들이 가상세계에서 수익을 추구하는 것을 무조건 잘못됐다고 단정 짓고 싶지도 않다. 수익은 가상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할 아이디어와 기술을 제공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다만 적어도 현실세계에선 더이상 좁혀질 것 같지 않은 빈부 격차가 그곳에서마저 재연되진 않길 바란다. 메타버스와 NFT에 관한 기술적 연구만큼이나, 경제적 전략만큼이나, 철학적 고민이 절실한 이유다.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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