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다시 쓴 2021 新‘택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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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를 현대의 사진으로 다시 쓴다.

김홍희 사진작가는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이 쓴 지리서 를 사진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전시한다. ‘김홍희 사진 택리지/루트 777’은 19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중동 리빈갤러리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리빈갤러리 개관 5주년 기념전시로 준비됐다.

김 작가가 우리 땅을 기록하는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20년 전의 일이다. 그는 ‘천 년 후의 인류가 지금 인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게 하자’는 생각으로, 1999년 새로운 천 년을 맞은 한국인 365명의 얼굴을 촬영한 ‘세기말 초상’ 작업을 선보였다. “이중환 선생의 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야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계속했지만 특별한 계기가 없었어요. 코로나로 다른 일을 못 하게 되니 그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김홍희 사진 택리지/루트 777’
리빈갤러리 개관 5주년 기념전
해안선 잇는 국도 77·7호선 따라
팬데믹 시대 땅과 사람들 기록
백두대간 등 5부작 10년간 계획

사진작가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소임인 ‘시대의 기록’.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기록하고 재해석할 필요가 있었다. “코로나는 전 국민의 문제인 동시에 전 인류의 문제잖아요. 인류 본연의 생존, 절체절명의 순간과 싸우는 우리를 기록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이번 작업 제목의 ‘루트 777’은 한반도의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국도를 의미한다. 부산에서 시작해 전라남도 목포를 거쳐 경기도 파주를 잇는 국도 77호선과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이어지는 국도 7호선을 합친 것이다. 김 작가는 올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6개월간 루트 777 사진을 찍었다.

파주 임진각 평화랜드, 보령 대천해수욕장, 진도 팽목항, 해남 땅끝마을, 여수, 순천만국가정원, 통영 미륵산, 부산 가덕도, 광안리해수욕장, 경주 황리단길, 동해 묵호 추암, 양양 홍련암, 속초 등 사진 속에 우리 땅 곳곳이 등장한다. “1월부터 3월까지 서해안을 찍었는데 추위에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듯 힘들었어요. 서해안에는 사람이 없어 전라도 사진에는 풍광이 많아요.” 안산 시화호조력발전소 휴게소 사진은 쓸쓸하다. 부안 곰소염전 사진에선 소금을 담았었던 통이 거꾸로 놓여 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인데 날도 우울하고 마음도 우울해서 사진도 쓸쓸하게 나온 것 같아요.”

김 작가는 사진을 찍으며 서해가 회색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지역의 사진을 찍으며 “국토 균형발전을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이룰 의식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루트 777을 따라 사진을 찍으며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들의 성정도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속에 마스크를 쓰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김 작가는 ‘마스크와 핸드폰’을 우리 시대의 표상이라고 했다. “우주시대가 열리는 지금 최첨단 기기를 사용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바이러스와 격전을 벌이고 있잖아요.” 그는 우주시대의 상징적 장소인 고흥 나로도에서 찍은 가족사진이 특히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자기들 핸드폰으로 제가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핸드폰을 돌려줄 때 가족들이 흩어지는 순간을 담아냈어요.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좋아해요.”

김 작가는 지난달 말 펴낸 사진집 (이은)에 실린 에필로그를 보여줬다. ‘우리는 더 이상 후손에게 원죄의식을 심어주어서는 안 됩니다.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이 좁은 땅에 살면서 원죄의식까지 심어서야 되겠습니까? 이유도 없이 지역 반감을 가지게 하는 이념과 권력의 개들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의 핵심은 우리나라는 당쟁 때문에 사대부가 살 곳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20대부터 지구촌 여기저기를 떠돈 제 입장에서 우리나라만큼 살기 좋은 곳이 없는데 막상 우리 생각은 너무 협소해요. 후손들을 위해 큰 눈으로 세상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김홍희 사진 택리지는 총 5부작으로 만들 예정이다. “내년 봄에 2차 백두대간 작업을 시작합니다. 3차는 영남대로, 4차는 삼남대로, 5차는 한강·낙동강·영산강을 따라가는 작업이죠. 1년 또는 2년 간격으로 해서 10년 정도 걸리는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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