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의 복식학급, 인구 감소시대 ‘통폐합 대안’ 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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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사라진다] ⑨ 캐나다 작은학교의 미래 준비

캐나다의 작은학교인 볼티모어 학교 학생들이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서 신나게 눈썰매를 타고 있다. 이 학교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은 수시로 함께 참여하는 행사(오른쪽)를 열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볼티모어 학교 제공

캐나다 최동단에 있는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주의 인구는 50만 명 정도로 캐나다 13개 주 중에 다섯 번째로 작은 지역이다. 전체 259개 학교의 학생 수는 6만 3000여 명. 1970년대 16만 2800여 명에서 2000년대 들어서는 10만 명 선이 무너지는 등 저출산 영향으로 점점 내리막을 걸었다.

이곳의 시골학교 159곳 중 93곳은 학생 수가 100명이 채 안된다. 한때 이 지역도 학교 통폐합으로 진통을 겪었지만, 작은학교들은 여전히 지역사회와 협력하며 복식학급을 도입해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었다. 특히 복식학급은 학교를 유지할 수 있는 긴요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교육당국이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해 학령인구 감소시대를 준비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유·초·중·고교 전 과정 187명
교사 19명 학생 잘 알아 도움 줘
지역사회 연계 방과후수업도 강점
1개 학년 이상 구성 복식학급 도입
상호작용 통해 긍정적 학습효과
교사 교육과 당국 지원이 관건


■학교와 지역사회의 상생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주의 주도 세인트존스에서 남쪽으로 50㎞를 달리면 페리랜드라는 조그만 마을이 나온다. 2016년 인구조사 때 페리랜드 주민은 414명에 불과했다. 페리랜드 볼티모어 학교는 이 주변에서 유일한 학교다.

지난달 5일 취재진이 찾은 볼티모어 학교는 아름다운 해안가에 자리잡고 있었다. 학생들은 학교 식당에 모여 점심 식사 중이었다. 재신타 맥그래스 교감은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볼티모어 학교의 교육 환경은 최고다”고 자랑했다.

볼티모어 학교는 학생 수 187명에 교사가 19명이다. 외딴 곳에 있는 학교 치고 학생수가 그렇게 적지 않다고 볼 수 있지만, 알고 보니 ‘K-12 통합 학교’였다. 유치원부터 초·중·고 과정이 모두 함께 있는 학교인 셈이다. 교사 한 명이 담당하는 학생 수는 10명가량.

맥그래스 교감은 “교사가 한 학생이 유치원 때부터 고교 과정을 마칠 때까지 모든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학생을 잘 파악하고 있다”면서 “교사들도 마을에 살고 있어 학생들이 상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볼티모어 학교의 또 다른 장점은 다양한 방과후학교 과정이다. 체육, 운동, 음악은 물론 탭댄스, 뜨개질에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하이킹, 낚시까지 매우 다채롭다. 이 많은 방과후수업 교사들을 확보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지역사회의 도움이었다. 주민을 비롯해 방과후학교 자원봉사자가 무려 120명에 이른다는 게 맥그래스 교감의 설명이다.

1968년에 설립된 볼티모어 학교에는 3대가 같은 학교에 다닌 가족이 있는가 하면, 형제나 자매가 함께 학교에 다니는 경우도 허다하다. 학교는 지역주민을 위한 모임, 운동 장소로도 제공된다. 연말에 볼티모어 학교에서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는데, 그때마다 지역 주민들이 모두 함께 즐긴다. 학교가 자연스럽게 마을의 중심이 된 것이다. 맥그래스 교감은 “큰학교가 나을 수도 있지만, 작은학교 역시 다양한 장점이 있고 이를 잘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식학급의 재발견

재신타 맥그래스 교감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의 75%가 수업 진행이다. 눈여겨 볼 것은 볼티모어 학교에서는 1개 학년 이상으로 구성된 ‘복식학급(multi-grade)’이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도 농어촌 지역의 작은학교에서 복식학급 형태의 수업이 있다. 하지만 복식학급은 교사들을 지치게 하고 학업성취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인식돼 반드시 해소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돼 왔다.

맥그래스 교감은 뜻밖에도 복식학급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그는 “유치원생과 1학년, 2~3학년을 묶은 체육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어린 학생들의 경우 상급 학생이 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더 잘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맥그래스 교감은 “복식학급에서 가끔 잘 숙련된 고학년을 모델로 내세우는데, 이를 통해 학생들은 리더십도 기를 수 있어 유익하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 지역에서도 처음부터 복식학급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1967년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주정부는 왕립위원회를 설치하고 뉴펀들랜드 메모리얼대학교의 필립 워런 교수 주도하에 지역의 교육 실태를 조사하게 했다. 위원회는 “작은 학교에서 학생들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없고, 복식학급은 학업성취도를 떨어뜨린다”며 “작은학교를 통폐합하고, 통학 거리가 길더라도 학생들이 겨울의 빙판길을 걷는 것보다 버스를 타고 큰 학교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결론내렸다.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수많은 작은학교들이 통폐합으로 사라졌다. 1960년대 800개 마을에 1266개의 학교가 있었지만, 1980년대에는 307개 마을 535개 학교로 줄었다. 그럼에도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주에서 복식학급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해왔다. 1986년에는 주정부 교육부가 작은학교 조사를 위한 패널을 선정했다. 이번에는 같은 대학의 프랭크 릭스 교수가 주도해 이듬해 위원회와는 정반대의 내용을 담은 ‘작은학교 연구 프로젝트 보고서’를 내놨다.

릭스 교수는 “복식학급과 단식학급 학생들 사이에서 학업 성취도 부문에서는 큰 차이점이 없었다”며 “학교 통폐합이 학업 성취도를 향상시킨다는 증거도 없다”고 위원회의 주장을 반박했다. 학업성취도는 부모의 직업이나 소득, 학력 등 사회경제적 요소가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릭스 교수는 또 그동안 작은학교와 복식학급에 대한 교육당국의 무관심을 지적하면서 “2개 학년을 초과하는 복식학급을 제한하고 작은학교에 더 많은 교사를 배치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메모리얼대학 교육학부의 데니스 멀카이 교수는 “중요한 것은 교육당국과 교육기관에서 교사들이 복식학급을 맡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시키고 전문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끝-

세인트존스(캐나다)=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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