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문화행정의 헛발질…‘문학관 추진위’부터 구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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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문학관 건립 표류

6대 광역시 중 공립문학관이 유일하게 없는 부산의 문화적 오명을 지우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부산문학관 건립 추진이 삐거덕거리고 있는 것이다. 시가 올 3월 부산문학관을 신평장림산단 장림포구에 건립한다고 발표한 계획이 무산돼버렸다. 꼼꼼하지 못한 부산시의 문화행정 탓이다. 해당 부지가 SK에너지 소유의 민간 부지로 이곳에 수소연료전지발전소가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부지도 확보하지 않은 채, ‘산업단지 대개조 사업’과 연계해 사업지 중 국비를 70% 이상 확보할 수 있다는 설익은 계획을 발표했던 셈이다.


공립문학관 없는 도시 오명
6대 광역시 중 부산이 유일
광역 단위 ‘거점 문학관’ 대비
자료 조사·수집 논의 필요
부산시 용역만으론 ‘한계’

그래서일까. 5월 초 부산시청에서 범문학계 간담회가 최초로 열려 3개 소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으나 이후 진척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의 문화 의지는 확실히 박약했다. ‘박형준 시정(市政)’ 출범 뒤 올 7월 인사이동으로 시의 문화예술과장이 교체되면서 부산문학관 사업은 설상가상으로 인수인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공중에 붕 떠 버린 것이었다.

여기에는 다른 맥락이 도사리고 있다. 그간 문학계 안팎에서는 “박형준 부산시장 취임 후 ‘이건희 기증관’ 부산 유치에 문화 행정력을 온통 쏟아부으면서 부산문학관 추진은 뒷전으로 밀린다”고 우려하는 소리가 나왔다. 그 우려가 현실로 돼 버린 셈인데, 이를테면 시정 초기에 밖으로 떠들썩한 일을 벌이면서 안으로 내실을 기하지 못하는 모양새가 됐다는 것이다.

왜 부산문학관이 필요한가. 대전·인천·대구·울산은 이미 2012~2014년 개관했고, 광주는 올 초 착공해 내년에 개관하는 마당에 부산은 뭣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2016년 문학진흥법 제정 이후 전국 곳곳의 공립문학관 설립은 가속화하면서 현재 전국의 문학관 100곳 중 공립문학관은 50곳을 헤아린다. 경남만 해도 공립문학관은 8곳이며, 2곳에서 추가 설립에 나서고 있다. 특히 문학진흥법에 근거해 2022년 개관하는 국립한국문학관을 정점으로 광역 단위의 거점형 문학관이 추진될 것에 대비해 부산문학관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부산문학관은 부산문학사의 체계를 세워 지역 정신사의 맥을 잡는다는 의미가 크다. 20세기는 근현대 문학의 언어적 고투가 진행된 세기였다. 지금 눈앞에서 유실되고 있는 자료의 수집·정리·보존·전시를 담당할 컨트롤타워인 부산문학관을 세워 20세기의 지난했던 언어적 고투를 지역 정신사 맥락에서 집대성하는 작업은 시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문화 자산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부산문학을 조망할 때 요산 김정한, 향파 이주홍, 청마 유치환, 조향이라는 4인은 리얼리즘 휴머니즘 서정주의 모더니즘과 맞물리면서 부산문학사의 커다랗고 선명한 자장을 형성하는데 그 마루와 골이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1920년대 문학잡지로서 동래 청년들의 과 부산포 청년들의 , 이어 1930년대 문학 동인지 과 등의 탄생과 모양새가 어떠했는지, 그것들은 가깝게는 3·1운동, 멀리로는 개화기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지역사·정신사의 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으로 임시수도가 들어서면서 부산에 한국문학이 집약한 1950년대, 지역문학운동이 뜨겁게 분출한 1980년대, 새로운 문학적 흐름이 형성되고 분기하는 2000년대 이후 각각 시대의 부산문학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이제는 역사적 갈무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인다. 부산문학관 설립은 제2도시의 문화적 역량을 증명하고, 문화분권과 로컬의 층과 켜를 확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 시급한 일은 부산시가 부산문학관 추진위원회를 구성·가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료의 실재 여부 조사와 수집 활동’ ‘부산문학관의 좌표 설정’ 등이 매우 중차대하기 때문이다. 부산시 행정 절차에 따르면 내년에는 ‘부산문학관 용역’만 진행될 우려가 높다. 그 예산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부지 선정도 제대로 진행될지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문화 행정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산을 제2의 문화창조도시로 만들겠다”고 공약한 박형준 부산시장이 부산문학관 건립에 대한 적극적 행보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문학 연구자 박태일(시인) 경남대 명예교수는 “부산문학관은 지역문학의 가치를 전승하고 지역성을 창출해 내는 바람직한 구심점이 된다”며 “빨리 추진위를 구성해 제대로 된 논의를 모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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