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부산 커피산업과 항만 배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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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충 해양산업국장·한국해양산업협회 사무총장

이스탄불에서 터키 커피를 취재한 적이 있다. 10여 년 전의 일인데, 전통시장의 한 골목 모퉁이에서 맡은 커피 로스팅 향이 아직도 코를 실룩거리게 한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나무가 처음 발견됐지만, 커피를 세계적인 식문화로 확산시킨 건 터키의 옛 제국인 오스만 튀르크다. 제국의 왕궁에는 한때 1000명이 넘는 요리사가 상주했고, 그중 상좌에 ‘커피 대신’이 있었다고 한다. 커피에 대한 옛 애정과 달리 터키 젊은이들은 가루가 많이 남아서 마시기 불편한 터키 커피보다 스타벅스 커피를 더 선호했다. 세계화에 실패한 커피 종주국의 ‘불편한’ 현주소가 씁쓸했던 취재였다.

‘커피 도시 부산’ 의미 있는 실험과 도전
그러나 ‘부산 커피’ 세계화 추진엔 한계
스타벅스 사례처럼 항만 배후부지 연계
유망 가공업체·자본 유치로 시너지 효과

커피는 우리나라에서도 핫한 아이템이다. 골목에 가게가 새로 생기면 둘 중 하나는 카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통계상 한국은 세계 6위권의 커피 소비국이 됐다. 특히 부산항은 국내에서 소비되는 커피 원두의 95%가 수입되는 통로다. 일광에서 영도까지 이어지는 바다 풍광의 카페 라인에서도 ‘커피 도시 부산’은 어색하지 않다. 때를 맞춰 언론의 관심이 커졌고 부산의 커피 소비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이 자생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세계적인 바리스타가 유독 부산에서 많이 배출된 이유도 이런 유전적 지형에서 찾을 수 있겠다. 이에 더해서 부산시는 지난 7월 커피산업 육성계획을 내놓았다. 글로벌 커피 허브센터, 커피 팩토리 존, 커피 관광 코스 개발 등의 계획이 벌써부터 주목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국내용’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아무리 좋은 스페셜티라도 ‘부산 커피’란 정체성을 확보하긴 쉽지 않고, 생산지나 글로벌 유통기지가 아닌 상황에서 세계적인 커피 도시로 자리매김할 개연성은 크지 않다. 부산 커피란 브랜드도, 그런 이름으로 수출되는 물량이 지금으로선 거의 없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카커피’가 예멘의 모카항에서 유래한 것은 커피 마니아라면 다 안다. 지금은 작은 항구로 전락했지만 모카항은 한때 커피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수출입 허브였다. 커피 수입항으로만 기능하는 부산항과는 달랐다. 이는 부산 커피의 세계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단순한 수입항에서 벗어나서 가공무역의 장점을 살린 커피 로스팅 거점과 글로벌 유통기지로 부산이 변신을 꾀해야 한다는 얘기다. 좋은 커피와 바다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카페 관광지로만 만족할 게 아니라 제조와 유통산업으로서 커피를 바라볼 시선과 정책, 전략이 요구된다.

부산신항 배후단지는 그런 점에서 부산시와 커피 업계가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박으로 대량 수입한 커피 생두를 가공해서 수출하는 고부가가치 산업 공간으로 활용하기를 제안한다. 다행히 자유무역지역법 개정안이 지난 6월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커피 원두를 포함한 농축산물의 제조와 가공업체 유치가 가능해졌다. 이런 법률적 토대 구축에도 불구하고 기업 유치를 위한 걸림돌은 적지 않다. 특히 커피 생두를 원료로 수입해서 로스팅하고 보관하는 과정에서 으레 20%가량 중량이 줄어드는데, 이를 국내 밀반입으로 오인을 받지 않도록 관세 당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커피는 다른 농축산물과 달리 국내 농가의 피해를 일으킬 우려가 적다는 점에서 부산시의 협의 노력에 따라 유망한 커피 가공업체와 자본 유치가 속도를 낼 수도 있다.

부산 커피 브랜드화에 대한 욕구가 어느 때보다 강하고 전문 인력과 유통 시스템이 조금씩 갖춰지고 있는 지금이 새로운 도전과 실험을 감행할 최적기다. 로스팅 기술과 관련 기자재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에 부산시의 과감한 투자와 관심도 필요하다. 부산시가 종합적으로 기획하고 배후단지 관리기관인 부산항만공사가 협력의 묘미를 보여 준다면 부산 커피의 글로벌 브랜드화는 물론이고, 배후단지 활성화를 통한 부산신항 경쟁력 향상까지 도모할 수 있다. 입주업체 85%가 창고업에 편중된 부산신항 배후단지의 체질을 개선하는 효과는 덤이다.

커피와 와인은 같은 기후대에서 재배되지만 각성과 수면을 각각 상징한다. 와인이 쉽게 잠들게 하는 효능을 지녔다면 커피는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마력을 발휘했다. 커피콩에서 ‘각성’을 추출하고 이를 달여서 전 세계인을 사로잡은 커피가 지금 부산의 미래를 일깨우고 있다.

스타벅스에 스며든 ‘커피 종가’ 이스탄불과 달리 동북아 커피 가공무역의 새로운 허브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부산이 놓치지 않기를 희망한다. 스타벅스의 해외 가공공장이 항만 배후부지에 위치하는 것처럼 부산 커피산업도 부산신항·배후부지와의 ‘찰떡궁합’을 보일 때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cho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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