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줄 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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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의무 이수자는 ‘줄’을 싫어하지 싶다. 군 복무 시절 숱하게 겪은 선착순 집합의 기억이 끔찍한 이들은 그럴 게 분명하다. 선착순이 비인격적이며 일방적인 줄 세우기여서다. 상명하복이 생명인 군대에서는 훈련과 교육 시 상급자의 선착순 명령이 떨어지면 부하나 병사들은 죽을힘을 다해 뛰어 줄을 설 수밖에 없다. 거부했다간 명령불복종 죄가 예상돼 뒷감당이 힘들다. 먼저 들어온 극소수에게는 휴식 등의 혜택이 주어지지만, 여기에 들지 못하면 불호령과 불이익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혹자는 “선착순이 군인의 심신을 강인하게 만든다”고 두둔한다. 하지만 선착순은 별다른 고민 없이 손쉽게 군기를 잡기 위한 업무편의적 방편일 뿐이다. 장병에 요구되는 덕목인 전우애나 단결력을 해치고 나만 살고 보자는 개인주의와 위화감을 조장하는 부정적인 면이 더 강하다. 길게 늘어선 줄 가운데 어디에서 상벌의 선을 그을지 알 수 없어 복불복 같은 요행심마저 부추긴다. 선착순은 단체 생활을 핑계로 비인간적으로 정신적·육체적인 고통을 주는 얼차려나 기합과 다를 바 없어 쇄신해야 할 병영 문화란 비판이 많다.

사회에도 다양한 유형의 줄 세우기가 존재한다. 교육부가 대학별 특성을 무시한 채 획일적인 기본역량 평가와 예산을 무기로 전국 대학의 줄을 세우는 행태가 전형적이다. 정당이 공천권을 쥐고 흔드는 것도 줄 세우기 폐단의 하나로 지적된 지 오래다. 매년 설과 추석을 앞두고 벌어지는 귀성 열차표 예매 행렬은 익숙한 풍경이다. 백화점 명품 행사와 유명 콘서트 역시 전날 밤부터 줄을 세운다. 이런 과정에 특혜를 받아 앞자리로 끼어드는 사람이나 새치기를 하는 얌체족, 줄서기 알바생이 등장하기도 한다. 민간 분야의 줄 세우기는 수요자의 자발성도 담겨 있으나, 교육부와 정치권의 경우는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해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현정권이 전 국민을 줄 세우며 고통까지 안기는 일이 잦아 답답하다. 지난해 코로나19 발생 직후 전국 약국마다 마스크를 사려는 긴 줄로 장사진을 이뤘다. 올여름엔 백신 접종 선착순 예약을 위해 온라인상의 밤샘 대기 사태가 빚어졌다. 이제는 디젤 차량의 필수 소모품인 요소수를 구입하기 위해 줄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모두 정부의 부실·늑장 대응 탓에 일어난 대란이다. 마스크와 요소수 품귀 현상은 공산국가나 시행했던 엄격한 배급제로 이어져 혼란을 키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과 선진국 위상을 가진 나라답지 않은 요지경이다. 정부의 깊은 반성과 조속한 요소수 문제 해결을 바란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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