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933 >‘갯수’는 몰라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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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얼마 전 어느 신문 1면에 실린 제목인데, ‘갯수’가 잘못이었다. 두 음절로 된 한자어는 아래 여섯 개에만 사이시옷을 받쳐 적기 때문이다.

‘곳간(庫間) 셋방(貰房)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횟수(回數).’

그러니 ‘個數’는 ‘갯수’가 아니라 ‘개수’라야 했던 것. 보다시피, 사이시옷은 말글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람들도 틀리기 쉽다. 오죽했으면 ‘사이시옷을 쉽게 쓸 수 있도록 해결하는 사람에게 노벨평화상을 줘야 한다’는 우스개가 나왔을까 싶다. 그 때문에 신문을 만드는 현장에서도 어색하게 사이시옷을 쓰거나 빼기보다는 편법을 동원하거나 아예 피하는 쪽으로 머리를 굴리는 판이다. ‘우윳값, 유가’ 대신 ‘우유 가격, 기름값’으로 쓰는 식인 것. 또 다른 방법도 있다.



어느 신문 제목인데, 여기선 ‘나랏빚’이 어색하다고 느껴서인지 ‘나라 빚’으로 해체하는 방법을 썼다. 하지만 이건 안 될 일. 관계가 긴밀해져서 한 단어가 됐는데, 그걸 억지로 다시 떼는 건 천륜(?)을 거스르는 일에 가깝다. 좀 어색해 보여도 ‘막냇동생, 하굣길’로 써야 하는 것. 함부로 해체하면 숙부인 ‘작은아버지’가 ‘(키)작은 (우리)아버지’가 되는 일이 벌어진다. 어색해도 자꾸만 쓰다 보면 익숙해진다. 원래 말이 그런 것이다. 물론, 근본 해결책은 사이시옷이 쓰이는 환경과 원리를 알고 깨치는 것, 그리고 열심히 외우는 것, 이 두 가지밖에 없다.

“머리가 부었는데 붓기가 계속 커지고 있다.”

어느 신문 기사인데, 여기 나온 ‘붓기’는 ‘부기’라야 했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을 보자.

*부기(浮氣): 부종(浮腫)으로 인하여 부은 상태.(부기가 오르다./부기가 내리다./부기를 빼다.)

즉, ‘부기’ 역시 두 음절로 된 한자어여서 사이시옷을 쓰지 않아야 하는 것.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자어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사이시옷을 정확히 쓸 수 있는 것.

‘낭랑한 목소리 위로 신춘 햇차의 향이 오래도록 온 방 가득 은은하게 퍼지고 있음이다.’

어느 신문에 실린 글인데, 여기 나온 ‘햇차’도 잘못. ‘해+ㅅ+차’가 아니라 ‘햇+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접두사 ‘햇-’은 뒷말 첫소리가 된소리나 거센소리가 아닐 때만 쓴다. 그러니 ‘해차’라야 했던 것. ‘햇쑥, 햇콩’이 아니라 ‘해쑥, 해콩’인 것도 같은 이치. 그러고 보면 이래저래 공부할 게 좀 있기는 하지만, 그래 봐야 외국어 공부 10분의 1 정도 노력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한국어 원어민인 것.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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