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짬밥의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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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대선에 코로나19에 어이없는 요소수 대란까지 일어나면서 나라가 온통 난리판이다. 이럴 때는 웬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면 사람들의 주목 한 번 못 받고 묻혀 버리기 마련이다. 손흥민 선수의 봉사활동 문제도 그렇다. 사실 봉사가 아니라 병역의 문제다.

손흥민 선수는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병역특례를 받게 되었다. 현역 복무 대신 2022년 5월 2일까지 544시간 봉사활동을 하면 된다. 그런데 문체부 예산안 심의에 나선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지난 8월 말 기준 손흥민은 249시간 10분만 채워 294시간 50분이 남았다”며 “손흥민이 6개월도 남지 않은 기간 동안 봉사시간을 채우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비대면 봉사활동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 검토해 달라”고 요구했다.

손흥민 봉사활동 병역특례 관심
병무청 ‘군대 다녀와야 당당한 남자’
대체 복무는 당당하지 못하나 질책
 
‘이대남’ 마음 잡기 위한 정치권
문제는 징병제지만 잠잠한 대권 후보
모병제에 대한 정치권 논의 필요해
 

나도 손흥민 선수를 좋아한다. 그런데 병역의무를 봉사활동으로 대체한다는 말은 썩 납득이 안 된다. 의무는 의무이고 봉사는 봉사인데, 의무로 하는 일이 어떻게 봉사인지 모르겠다. 비대면으로 봉사활동을 한다는 말은 더 납득이 안 된다. 손 선수가 코로나 사태로 봉사 기간을 못 채워서 예외가 필요하다면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자영업자, 소상공인, 비정규직 젊은이들 모두 비대면으로 병역의무를 할 수 있도록 해 줘야 옳지 않은가 말이다.

병무청이 군대를 다녀와야 당당한 남자라는 동영상을 배포했다가 질책을 받았단다. 이런저런 이유로 병역의무를 공익 근무로 수행하게 된 많은 청년을 당당하지 못한 남자로 치부해 버린 것이다. 나도 현역병으로 27개월 동안 복무했지만, 솔직히 현역의 자부심은 공익이나 면제를 받은 친구들과 술 마실 때나 가끔 필요할 뿐이다. 병무청의 동영상을 보고 있으니 국민지원금을 못 받은 분들은 국민 상위 12%에 든다는 사실을 자부심으로 삼으라던 김부겸 총리의 말이 떠오른다. 내가 우리 국민들 가운데 소득 상위 12%에 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아는데 무슨 자부심이 들까?

요즘 대선에 나온 여야 후보들의 고민은 ‘이대남’ 즉 이십대 청년 남성들의 표심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 예비역 병장들을 만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다 보니 채용 가산점이 없어지고, 이래서 군을 지원하거나 복무하는 과정에서 사기도 많이 위축된 거 같다”고 말했다. 우선 군 가산점이 없어진 것은 여성의 사회진출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헌법재판소가 군 가산점을 위헌이라고 판결한 이유는 그 제도가 군 제대자와 비제대자를 차별하기 때문이다. 상식과 공정을 주장한 윤석열 후보가 어째서 이런 불공정을 옹호하는지 모르겠다. 더 어이없는 일은 가산점이 있다고 병역의무자들이 사기가 올라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병역의무를 해 본 적이 없는 윤석열 후보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이 모든 논란과 우스운 소동의 원인은 징병제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생산성 높은 시절에,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경제활동을 해야 할 청년들을 현역의 자부심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복무하게 두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낭비일 뿐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모병제로의 전환을 정식으로 논의해 보아야 할 때다. 그런데 경선에 나온 여야의 예비후보들 가운데 어쩌면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홍준표 후보 홀로 모병제를 공약으로 냈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나마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가 모병제를 정식으로 제안한 일은 반갑다. 하지만 여야의 대선 후보들이 이 문제를 모르는 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라도 누군가 뜨거운 감자를 껍질 벗겨 놓으면 홀랑 집어먹겠다는 심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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