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재명 후보에게 진짜 필요한 차별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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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팀장

더불어민주당이 방역지원금 등 '이재명표 예산'에 비협조적인 기획재정부를 향해 "모피아" "탁상머리 행정", 심지어 국정조사까지 언급하며 맹폭하고 있다. 그러나 재난지원금을 이름만 바꾼 방역지원금에 대해 재정 여력이 없어 불가하다는 건 김부겸 국무총리까지 언급한 이 정부 내 일치된 의견이다. 이 후보와 당이 홍남기 경제부총리만 '정밀 타격'했지만, 사실상 청와대를 향한 시위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현 정부와의 본격적인 차별화 행보인 것이다. 어차피 시기의 문제이긴 했다. 우리 정치사에서 정권 말 여권 내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충돌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예외는 없었다. 다만 성패는 갈렸다.

문 정부와 ‘차별화’ 본격화한 與
활로보단 역효과 가능성 높아 딜레마
최근 지지율 정체 이재명 정치의 한계
‘과거 이재명’과의 차별화가 관건인 듯

17대 대선 당시 노무현 정부에 대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차별화 전략은 완전히 실패했다. 대통령 탈당을 요구해 관철시키고, 정책 노선도 대폭 수정했지만 정 후보는 최대 표차로 패배했다. 반대로 19대 대선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거리 두기'는 성공했다. 그건 박 후보가 이 대통령 집권 기간 줄곧 '여당 내 야당'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박 후보의 '정권 교체' 주장이 지지층과 중도층에 먹혔다.

애석하게도 이 후보는 박 후보보다 정 후보와 처지가 비슷하다. 당 주류인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과 결합하기 위해 문 대통령에 대한 '충심'을 누차 강조해온 이 후보가 이제 와 문 대통령과 각박하게 척을 질 경우 정략적 행보로 비칠 수밖에 없고, 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이 후보를 지지한 지지층은 등을 돌릴 공산이 크다. 문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이 후보에게 활로가 되기 어렵다.

위기 신호가 강해지자 이 후보 측에선 '선대위가 기민하지 못하다' '의원들이 안 움직인다' 등 이런저런 불만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진단이 틀리면 해법은 보나마나다. 현 시점에서 이 후보의 가장 가장 큰 리스크는 이 후보 자신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국민 60% 이상이 거부하는 재난지원금을 한사코 주고 말겠다는 오기, 미 상원의원과의 첫 대면에서 분단의 책임을 묻는 돌출성, 불법 투쟁도 응원하겠다는 무모함 등이 '불안한 후보' 이미지를 고착화하면서 중도 확장에 제동이 걸렸다는 게 정치권 다수의 진단이다.

개인적으로는 "토지보유 상위 10% 안에 못 들면서 기본소득토지세를 반대하는 것은 악성 언론과 부패 정치 세력에 놀아나는 바보짓"이라는 SNS 메시지를 가장 심각하게 봤다. 그렇게 현명하다고 했던 다수 국민들을 돌연 생각 없는 사람으로 몰아세운 것도 마뜩잖지만, '내 이익'에 부합하면 당연히 찬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그 '인간론'에 입맛이 썼다. 이 후보에게는 바보짓으로 보일지 몰라도 세상에 공짜는 없고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는 정도는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본능적으로 안다. 가진 자의 주머니를 털어 덜 가진 자에게 나눠준다고 하면 무조건 박수 치는 사회, 상위 10%와 나머지 90%가 반목하면서 서로 망하길 바라는 사회가 우리의 미래는 아닐 것이다. 지도자라면 이런 국민 정서도 섬세하게 살펴 정책을 추진해야 할 텐데, 계층 갈라치기로 관철시키려는 이 후보를 보면 분열을 국정 동력으로 삼은 '트럼프식 정치'의 예고편을 보는 듯해 우려스럽다.

이 후보는 '조국 사태' 이후 여권 내 금과옥조처럼 굳어진 '밀리면 죽는다'를 가장 뼈 속 깊이 체화한 듯하다. 비주류 정치인에서 불과 10년 만에 여당 대선주자로 수직상승하는 데 최대 자산이 된 '한다면 한다'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는 이런 정치공학의 효능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전 국민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대선 무대에서는 이 후보의 '닥치고 공격' 전략의 한계가 도드라지고 있다. 며칠 전 "부산, 솔직히 재미없잖아"라는 이 후보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언뜻 든 생각은 '말이야 맞지' 정도였다. 대선후보로서 다소 품위는 없어 보여도, '실언이었다. 부산시민에게 송구하다' 정도로 물러섰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이 후보는 역시 가만히 당하지(?) 않았다. "기울어져도 너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언론과의 전쟁으로 판을 더 벌렸다. 나를 향한 공격에는 더 압도적인 반격으로 갚는 이 후보다운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 후보가 적대시하는 보수 언론뿐만 아니라 대다수 언론이 자신에게 냉담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운동장이 문제가 아니라 뛰고 있는 자신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마침 민주당 전략조직에서 이 후보의 강한 추진력은 '양날의 칼'이며, 독선으로 흐를 수 있다는 반성적 진단이 나왔다고 한다. 과연 이 후보는 '지금까지 이재명'과 차별화에 나설 수 있을까?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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