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식의 인문예술 풀꽃향기] 가을 나무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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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고신대 총장

가을이 산으로 내려앉고 있다. 가을 산을 오르면 연녹색 물감을 칠한 단색조 캔버스 같았던 봄 여름과 달리 이 산마루에서 저 산마루까지 거대한 황엽, 갈엽, 홍엽의 바다가 파도치듯 넘실댄다. 계절이 바뀌든 말든 독야청청한 소나무·잣나무들도 있지만 작은 잎사귀라도 달고 있는 나무들이라면 가을 햇살 아래에서 알록달록 울긋불긋 온갖 현란한 색채의 세계를 연출한다. 조물주는 가을 하늘은 눈부시게 온통 파란 색깔로 도색하셨고 가을 산은 앙증맞은 단풍잎을 이어 붙여 웅장한 모자이크 작품을 만드셨다. 그리고 그것을 음미하는 우리의 가슴에도 감상의 색등을 켜시고 계절의 정취에 흠뻑 잠기게 한다. 이런 거대한 모자이크의 실체는 나무들인데, 가을날 이것들의 삶은 어떠할까?

단풍 물든 가을 산의 정취 황홀한 절기
마침내 그 찬란함마저 벗어던지는 나무들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속물성 비웃어

첫째, 화려하게 펼쳐진다. 알베르 카뮈에 의하면 가을은 모든 잎사귀가 꽃이 되는 제2의 봄이다. 이맘때면 나무들은 안으로 감추어 두었던 비장의 색들을 드러내므로 화가들이 그려 내는 상상의 자연보다 훨씬 더 황홀한 장면을 연출한다. 느릅나무와 굴참나무, 싸리나무와 생강나무, 그리고 은행나무는 노란색 잎사귀를 만든다. 참나무와 신갈나무, 느티나무와 너도밤나무는 잎사귀를 짙은 갈색으로 물들인다. 독일이나 영국 등 유럽 지역의 나무들은 대개 이런 황갈색 단풍이 지배적이고 붉은 단풍은 마가목 같은 소수의 토착 나무에 불과하다. 반면 우리의 가을 산은 붉은 색깔이 압도적인데, 이런 홍색은 단풍나무를 위시하여 옻나무 붉나무 벚나무 화살나무 팥베나무 부게꽃나무 복자기나무 등에서 펼쳐진다. 하지만 같은 나뭇가지에 달린 붉은 잎사귀들이라도 제각각인데, 이를테면 분홍 선홍 다홍 주홍 자홍 진홍 등 얼마나 다양한 색상의 층차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이 세상 어디에 이런 찬란한 아름다움이 있을까?

둘째, 미련 없이 떨어진다. ‘가을편지’라는 시에서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늦가을 온갖 색상을 화려하게 펼쳐 보인 나무는 시인처럼 옷을 벗고 몰골만 남게 되고,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읊조린 것처럼 ‘강풍에 잎사귀를 빼앗겨 유령처럼 보이는 벌거숭이’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나무는 온통 풍요로운 가을 세상에서 홀로 유독 입은 옷까지 땅으로 다 던져 주면서 철저한 빈털터리가 된다. 나무의 이런 모습은 고대 사막의 은수자(隱修者)나 중세 수도자들에게서 보이는 소위 ‘자발적 가난’을 보여 준다. 말 없는 생물의 절대적 청빈 앞에서 현자들의 ‘무소유’ 타령은 되레 공허한 염불에 불과한 게 아닐까. 인간의 비단옷과 비교가 안 되는 저 찬란한 부요함을 훌훌 던져 버리는 가을 나무의 결기를 보라.

셋째, 가차 없이 잘린다. 건축에서 대리석 같은 석재를 사용해 온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목재를 주재료로 활용했다. 그런 대목 공사에서만 아니라 소목장들도 장롱이나 소반 같은 안방 가구, 서안이나 사방탁자 같은 사랑방 가구를 제작할 때 반드시 목재를 사용했다. 따라서 목수들은 산을 누비며 좋은 목재가 될 나무들을 찾곤 했는데, 처서가 지나 낙엽이 지는 늦가을이 벌목의 적기이다. 나무는 건조, 수축되면서 변형이 일어나고 또 목재의 강도는 수분 함량에 반비례하므로 잎사귀가 떨어져 수분이 적은 상태의 나무를 벌목하는 게 좋은 것이다. 그렇게 하여 목공의 손에 들어온 나무는 주택의 구조를 이루거나 목리(木理)가 살아 있는 아름다운 목기들이 되는데, 이제는 사람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목재가 되려고 뿌리가 뽑히고 손발이 다 잘려 몸통만 남아 있는 나무를 보노라면 비록 그것이 영혼 없는 식물에 불과하나 생명의 무상함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그 나무의 잘림이 순교나 순국처럼 숭고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인간을 위한 ‘죽어서 천년’의 새 생명을 얻는 것이기에 장엄한 죽음과 부활인 셈이리라.

세상에 사는 것들 가운데 땅 위에서 하늘을 이고 서 있는 생명체는 인간과 나무뿐이다. 어쩌면 이런 가을날의 우수 같은 계절을 타는 것도 비슷한 듯하다. 하지만 나무는 나이 먹은 흔적은 안으로만 남기고 겉은 그토록 무성하고 빛나는데, 인간들은 몸도 마음도 세월의 흔적을 피해 갈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사라짐에 대한 의식이 없이 끌어모으는 욕망에만 포로가 되어 있는 데 비해, 가을 나무들은 이런 우리의 속물성을 비웃듯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들을 훌훌 던져 버리고 자유의 알몸이 되는 것이다. 보라, 가을 산은 갈바람의 반주에 현란한 춤을 추며 낙하하는 낙엽들의 공연장이다. 저들은 떨어지는 모습도 시리도록 찬란한데, 우린 아직도 이 생의 모진 가지에 추하게 빌붙어 있으니 아, 살아 있는 것도 죄스러운 이 황홀한 가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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