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산 정체성’ 발굴 근현대역사관, 축소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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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가 내년에 개관할 부산근현대역사관의 위상을 당초 계획보다 크게 축소하려는 모양이다. 원래는 부산박물관과 분리된 독립 기관으로 운영할 계획이었으나 이를 변경해 부산박물관 분관 형태로 가닥을 잡았다는 소리가 들린다. 조직 규모도 기존 30여 명 수준에서 10여 명 이내로 대폭 줄이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임 부산박물관장의 직무에 복천박물관, 정관박물관과 함께 부산근현대역사관도 포함하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최근 배포하면서 이 문제가 불거졌고, 시 관계자도 관련 내용을 시인했다고 한다. 이미 독립 기구를 전제로 운영 조례까지 만들어 놓은 부산시인데,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싶다.

시, 부산박물관 분관 형태 적극 검토
“운영 조례 만들고도 무시” 비난받아

산하 기관 전체 인력 운용에 한계가 있는 만큼, 오페라하우스 등 새로 생길 다른 문화 기관에 배치해야 할 인력까지 고려하면 부산근현대역사관의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17년 문체부의 타당성 사전평가에서 기존 직제가 적정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70억 원의 국비까지 지원받은 점을 돌아보면 이는 궁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같은 해 부산연구원도 근현대역사관을 별도 사업소로 운영하는 게 적정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무엇보다 부산시는 지난 7월 근현대역사관 운영 조례를 발의해 부산시의회가 제정토록 했다. 앞뒤가 안 맞는, 거꾸로 가는 행정의 전형인 셈이다.

개항기 부산은 외래 문물을 받아들이는 첨병이자 외세 침탈의 최대 피해지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엔 일제 수탈의 상징적인 기구들이 부산에 밀집한 동시에 근대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모순된 현상을 보였다. 해방 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는 일시적이기는 하나 대한민국 수도로서 기능했다. 1960년대 이후엔 산업 부흥의 기지 역할을 했으며, 부마항쟁 등으로 우리나라 정치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부산의 정체성은 개항 이후 그런 격동의 역사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부산 근현대사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도 부산시는 그에 역행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한심하다 하겠다.

부산의 정체성을 보여 주는 상징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부산근현대역사관의 위상은 더 높이면 높이지 낮춰서는 안 된다. 부산 근현대사 관련 인력도 확충해야 한다. 인천시립박물관의 경우 근현대사 관련 인력이 전체 학예연구직의 21.7%가 넘는데, 부산박물관은 6.6%에 그친다고 한다. 이러고서야 부산근현대역사관이 제대로 설립된다고 해도 어떻게 제 역할을 하겠는가. 시의회의 ‘부적격’ 판정에도 산하 기관장 임명을 강행하는 등 안 그래도 독선적 행정 논란을 일으켜 비난받는 부산시다. 이번 일도 근현대역사관 운영 조례를 무효화하려는 것으로 비쳐 시의회의 반발을 사고 있다. 시의 역사 인식이 하루빨리 바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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