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때 일본 끌려간 조선 도공이 빚은 건 관용의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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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익장이다. 1939년생 82세의 강남주(사진) 전 부경대 총장이 두 번째 장편소설 <비요(秘窯)>(푸른사상)를 냈다. 4년 전 조선통신사 화가 변박의 그림 행적을 추적한 장편소설 <유마도>를 낸 그이다. “이번 소설은 400여 년 전 정유재란 직후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기장들이 산속의 비밀 가마에 갇혀 평생을 세상과 단절된 채 도자기만 굽다가 역사의 연기로 사라진 발자취를 찾아낸 소설입니다.”

그는 한·일 문화교류의 속살을 탐구하는 일에 평생을 보냈다. 그간 150번도 넘게 일본을 방문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은 조선 도공들을 일본에 끌고 간 도자기 전쟁이었다.

강남주 두 번째 장편소설 ‘비요’
흔적 없이 사라진 도공 삶 복원
80대 작가·10대 독자 토론회도

“끌려간 도공들은 한국과 가까운 규슈 지역에 자리 잡았어요. 도예가 이삼평과 심수관은 많이 알려져 있잖아요. 이삼평은 규슈 북쪽 사가현 아리타, 심수관은 규슈 남쪽 가고시마로 끌려갔어요. 비요는, 이삼평이 자리 잡은 아리타 바로 인근 이마리 오카와치야마에 있어요.”

비요는 이름처럼 비장한 사연이 흐른다. 이삼평과 심수관이 현지에서 결혼해 대를 이었다면 비요의 조선 도공들은 대를 잇지 못하고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다. 비요 마을에 조선 도공의 집단 묘가 있는데 비석들에는 야마시타(山下), 무라카미(村上), 시모무라(下村)라는 간단한 일본 성만 새겨져 있다. 도자기 기술을 인정받아 사무라이가 될 때 받았던 일본식 성이었다. 그것만 남기고 그냥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 사라짐에 대한 기억과 재생의 헌사가 이 소설이다.

소설은 이제 막 장가를 든 경남 하동의 도공 삼룡이가 정유재란 때 끌려가서 조선 각지에서 온 도공들과 함께 전인미답의 산속인 ‘오카와치야마’에서 온갖 고생 끝에 바위를 가루 낸 도자기 흙으로 세계적 명품 도자기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그들의 삶은 무엇을 말하는가. 강 전 총장의 말이다. “비요에서는 나중에 도자기를 배우려는 일본인 청년들을 받아들입니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려면 그 원한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기술을 배우러 온 일본인 청년을 원한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관용으로 대하자는 것이었죠. 그래서 기술을 가르칩니다.” 그의 말은 이어진다. “비요에서 그런 변화가 생길 즈음,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오가게 되었어요. 서로 싸우지 말고 진실하게 교류하자는 성신교린(誠信交隣)이 조선통신사의 뜻이었지요. 원한이 굳어지면 그 원한에 묶여 두 나라는 모두 앞으로 나아갈 발걸음도 무겁게 된다는 것을 깨우쳤던 것입니다.”

그는 “어느 시대나 전쟁이 나면 부역하는 이들이 생긴다”며 ‘순왜(順倭)’를 말했다. “왜군에 협력한 순왜들이 있었지요. 조선인이 조선인을 잡아갔던 것은 전쟁의 비극이었습니다.” 그 비극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문화의 새 길을 열었던 조선통신사 같은 한·일 교류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비밀의 가마가 빚어낼 그릇이 바로 그런 것이다.

한편 장편소설 <비요>를 놓고 29일 오후 6시 30분 영광도서 9층 문화홀 2관에서 ‘제1회 세대를 가로지르는 대화적 비평광장’이 열린다. 영광도서 주최, 고석규비평문학관 주관. 강남주 전 총장을 초청해 남송우 문학평론가의 사회로 11~16세의 청소년 비평단 12명이 세대를 뛰어넘는 대화적 비평광장을 마련한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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