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월세 난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똘똘’하진 않아도 내 집 한 채 건사하는 거로 지금까지 살아온 나로서는 서울 집값의 가파른 상승세가 딴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특히 고가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한 사람들이 ‘종합부동산세 폭탄’을 걱정할 때도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부산에 사는 내가 서울 집값에 관심을 둘 이유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학업이나 취업 등으로 객지살이를 시작한 아이들 덕분에 신경이 쓰인 건 사실이다. 아직은 원룸이나 투룸 수준의 빌라나 오피스텔 중에서 구하는 데도 서울 집값 상승의 영향을 톡톡히 받고 있다.

서울 집을 옮겨야 할 일이 생겼다. 둘이 각각 살던 집을 하나로 합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동안 전셋값이 오른 것도 모자라 부모 앞으로는 이미 집이 있어서 자녀들이 거주할 목적의 전세 대출이 쉽지 않았다. 반전세만 되어도 사정이 나을 텐데, 집주인들은 오롯이 월세나 준월세(보증금이 월세의 12∼240개월 치인 거래)를 고집했다. 전세 대신 월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월세 난민’이 속출한다더니 우리가 딱 그 신세였다. 올해 서울의 아파트 월세 거래량은 이미 2011년 통계 집계 이래 최다를 기록했다.

더 우울한 소식은 부산·울산·경남의 고용률이 최근 10년간 최하위 수준으로 몰락했다는 통계조사였다. 한국경제연구소가 ‘전국 16개 시도의 지난 10년간 고용 동향’을 분석했더니 부산은 올 3분기 기준 지역 고용률이 16위(56.2%)로 꼴찌였고, 울산은 15위(57.5%), 경남은 8위(60.8%)로 나타났다. 특히 지방을 이탈한 청년들은 고임금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은 올해 3분기 기준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청년 고용률이 가장 높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전입 인구의 30.8%가 직업 목적이었고, 이 중 20대 비중은 지난해 49.5%로 절반에 달했다.

서울로, 서울로 진입하려는 청년들의 주거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수억 원의 현금을 묻어 놓고 사는 이들이 아니라면 누구나 월세 난민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의 신규 주택 공급 물량 확대 계획도 좋고, 투기·공포 수요 억제도 좋은데, 당장은 집 없는 서민들이, 혹은 새롭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이 집 문제로 필요 이상의 고통을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적어도 투기와 실수요는 구분하는 정책이 간절해서다. 이 좋은 가을날, 지상의 방 한 칸 문제로 고민에 빠져 전전긍긍한다는 게 참으로 속상하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