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논쟁 또 불붙인 이준석… ‘세대 구도’ 활용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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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준석(오른쪽 두 번째) 대표와 김기현(오른쪽 세 번째) 원내대표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kimjh@

정치권이 또 한번 ‘페미니즘 논쟁’으로 들썩이고 있다. 논쟁의 주인공은 ‘이대남’(20대 남성)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이 대표의 ‘안티 페미니즘’ 정치를 정면으로 비판해 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올 5월 이 대표가 당 대표 공약으로 내세운 ‘여성 할당제’ 폐지를 놓고 격렬하게 부딪친 두 사람은 최근 서울에서 일어난 30대 여성의 데이트 폭력 피살 사건을 두고 또 한번 충돌한 것이다.

이번 설전은 이 대표가 전날 정의당 장혜영 의원을 겨냥해 “선거 때가 되니까 또 슬슬 이런저런 범죄를 페미니즘과 엮는 시도가 시작된다”고 한 SNS 글이 발단이 됐다. 장 의원은 앞서 지난 20일 이번 사건과 관련, “이별통보 했다고 칼로 찌르고 19층에서 밀어 죽이는 세상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라며 “페미니즘이 싫은가. 그럼 여성을 죽이지 마라. 여성의 안전 보장에 앞장서라”는 글을 올렸다.

30대 여성 데이트 폭력 피살에
이 대표 “그저 흉악 범죄일 뿐
젠더 이슈화 하지 말아야” 주장
진중권 “교제살인은 젠더 범죄
당 대표로서 당 미래 생각해야”
국힘 내부 “여성 배척 오해 우려”
2030 남성 공략 셈법 풀이


이에 이 대표는 ‘고유정 사건’을 들어 “전 남편을 토막살인한 시신을 해상에 투기한 사건을 보고 일반적인 사람은 고유정을 흉악한 살인자로 볼 뿐”이라며 “애써 그가 여성이기 때문에 젠더 갈등화하려고 하지도 않고 선동하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고유정 사건을 젠더 관점에서 해석하지 않듯, 이번 사건도 성별을 떠나 흉악범의 일반적인 범죄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유태인의 경제활동에 대한 반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을 거라는 선동, 전라도 비하 등과 다를 것 없는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프레임은 2021년을 마지막으로 정치권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진 전 교수가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21일 페이스북에서 “공당의 대표가 이제 교제살인까지 실드(방패) 치고 나서나. 국민의힘의 이준석 리스크가 현실화했다”며 “안티 페미니즘으로 재미 좀 보더니 정신줄을 놓은 듯”이라고 이 대표를 맹비난했다.

이 대표 역시 해당 메시지에 댓글을 달아 “범죄를 페미니즘에 끌어들이는 것 자체가 위험한 선동”이라며 “두 사건 모두 ‘gender-neutral’(성 중립적)하게 보는 것이 정답인데, 젠더 이슈화시키는 멍청이들이 바로 갈라치기 하는 시도”라고 응수했다.

정치권에서는 이처럼 페미니즘 논쟁을 나서서 제기하는 듯한 이 대표의 행보를 두고 이번 대선을 ‘세대 구도’로 치르겠다는 전략적 포석이 담긴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 대표는 과거의 지역 분할 구도가 약해졌다는 점을 들어 세대 구도 선거가 야당에 유리하다는 인식을 보여 왔다. 전통적으로 50대 이상은 국민의힘을, 20~40대는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해 왔다는 점에서 야당이 2030, 그중 정치에 관심이 많은 남성 지지층을 확고하게 다질 경우 선거 구도가 크게 유리해진다는 셈법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기존의 세대별 투표 성향을 보면 이 대표의 ‘이대남’ 확보 전략이 당연히 위협적”이라며 “민주당의 경우, 기존 여성친화적인 정책과의 일관성과 당내 여론 지형 등에서 대응 수단에 한계가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정치 지도자가 첨예한 갈등 이슈를 선거에 활용하려는 게 옳으냐는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 대표에 대한 2030의 지지가 확고하다는 점에서 대놓고 말을 하진 않지만 이 대표가 공연히 일을 키웠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감지된다. 이번 사건이 성격 자체가 명백한 데이트 폭력이고, 피해자의 참혹한 죽음에 대한 여성들의 공분이 큰 상황에서 당 대표가 굳이 ‘이대남’의 정서를 대변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 대표가 지나치게 2030 남성 위주의 시각을 드러내면 당 전체가 2030 여성들을 배척한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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