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차량 속 의식 잃은 운전자… 6인의 ‘어벤져스’가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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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운전자 등 2명이 탄 승용차가 도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부산 중구 영주동 부산터널 앞 사고 현장의 23일 모습(왼쪽). 퀵서비스 기사 손병오(54) 씨가 이날 현장에서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처음엔 솔직히 무서웠지만, 몸과 마음이 움직여 나서게 됐습니다.”

지난 21일 부산의 차량 화재사고 현장에서 의식을 잃은 운전자를 구조해 심폐소생술을 한 퀵서비스 기사 손병오(54) 씨는 이렇게 말했다. 경찰은 이날 서슴없이 구조에 나서 시민 2명의 목숨을 구한 손 씨 등 ‘시민 영웅’ 6명에게 감사장을 주기로 했다. 부산경찰청은 “지난 21일 중구 영주동 부산터널 교통사고 현장에서 사고 차량 탑승자 구조와 현장 정리에 도움을 준 시민 4명과 부산터널 관계자 2명에게 감사장을 전달할 계획이다”고 23일 밝혔다. 경찰은 이들 외에도 도움을 준 시민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대로 감사장을 전할 방침이다.

부산터널 앞 중앙분리대 충돌
엔진에 불붙어 폭발 일촉즉발
택시·퀵서비스·사다리 차 기사 등
위험 무릅쓰고 구조 달려들어
심폐소생술·교통정리까지 완벽



사고가 난 건 지난 21일 오후 5시 30분께. 부산터널 영주동 방면 출구 앞 100여m 지점을 달리던 A 씨의 승용차가 갑자기 중앙분리대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이 충격으로 운전자 A 씨와 동승자 B 씨가 의식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승용차 보닛이 심하게 파손되면서 차량 엔진에 불이 붙었다. 행여 있을지 모를 차량 폭발 전에 이들을 구해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가장 먼저 승용차로 뛰어온 건 현장을 지나던 택시운전사 김 모 씨였다. 택시를 뒤따르던 퀵서비스 기사 손 씨도 오토바이를 갓길에 멈춰 세웠다. 손 씨는 김 씨와 함께 차 문을 열고 의식을 잃은 A 씨를 구조하려 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본 사다리차 기사 한 모 씨도 비상등을 켰다. 한 씨는 평소 차량에 싣고 다니던 공구를 들고 나와 사고 차량의 창문을 깨고 구조를 거들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A 씨가 불타는 차량에서 꺼내져 안전한 곳으로 옮겨진 건 오후 5시 35분. 최초 발견자인 김 씨가 구조에 나선 지 2분 만이었다. 그러나 불타는 차량 조수석에는 아직 B 씨가 남아 있었다. 손 씨가 A 씨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사이 두 사람은 조수석 창을 깨고 B 씨를 마저 구출해 냈다. 현장으로 달려온 시민 박 모 씨도 119에 신고를 하며 구조를 거들었다. 당시 서구 한 치킨집에서 중구로 배달을 가던 손 씨는 “오토바이 헬멧 안까지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불길이 거셌다”며 “도착한 소방차를 보고 ‘내 할 일을 다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배달하러 떠났다”고 설명했다. 부산터널 관리사무소에서 당직을 서던 직원 김 모 씨와 조 모 씨도 소화기를 챙겨 현장으로 달려왔다. 김 씨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 운전자는 구조된 상황이라 바로 동승자 구조에 나섰다”며 “이후 소방차 진입을 돕기 위해 사고 잔해를 치웠다. 구조된 이들이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전했다.

부산터널 일대는 퇴근시간이면 상습 정체가 벌어지는 구간이다. 사고 차량에서 탑승자는 모두 구해 냈지만, 불길이 잡히지 않아 2차 사고 위험은 여전했다. 이때 한 시민이 경광봉을 휘두르며 교통 정리에도 나섰다. 평범한 시민들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뛰어든 덕분에 이날 사고는 다행히 인명피해 없이 수습됐다. A 씨와 B 씨는 현재 의식을 회복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김만석 부산 중부경찰서 영주파출소장은 “사고 차량에 불이 나 하마터면 큰 사고로 번질 수도 있었는데 시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나서서 피해를 줄였다”고 말했다.

글·사진=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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