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의지 약한 데다 팬데믹·대선 정국에 공약 물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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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부 ‘2차 공공기관 이전’ 백기

금융 공공기관이 밀집한 부산 남구 문현금융단지 전경.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 22일 수도권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6개월 동안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부산일보DB

문재인 정부의 수도권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 계획이 끝내 수포로 돌아갔다. 대선을 앞두고 공공기관 유치를 둘러싸고 지역 간에 유치전이 불거질 경우를 우려한 것으로 보이지만, 의지가 부족한 채 정무적으로 판단한 데 대한 비판이 거세다. 다음 정부에서도 국정 우선 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권 출범 후 줄곧 이전 약속 불구
코로나 방역에 국정 초점 맞춰져
대선 앞둬 기관 유치 경쟁도 부담
결국 정무적 판단에 실행 무산돼
비수도권 지자체 반발 여론 확산
다음 정권서도 이행 쉽지 않을 듯


■시기 놓친 공공기관 이전

수도권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는 문제는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구상한 국가균형발전 계획에 따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참여정부는 공공기관이 옮겨가는 곳을 ‘혁신도시’로 규정했다. 결국 153개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해 2020년 17년 만에 사업을 완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혁신도시 시즌2’를 공약하면서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둔 그해 2월 문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 비전과 전략선포식’ 자리에서 “노무현 정부보다 더 발전된 국가균형발전을 더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이해찬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대표연설을 통해 “수도권 공공기관 중 이전 대상 122개를 적합한 지역으로 옮겨가도록 당정 간에 협의하고, 참여정부에서 시작된 혁신도시 건설에 더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4·15 총선을 앞둔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총선 이후 공공기관 지방 이전 추가 지정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비(非)수도권 지자체를 중심으로 공공기관 추가 이전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었고, 시·도마다 공공기관 유치를 위한 특별기구를 설치하는 등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하지만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국정의 초점이 방역에 맞춰지면서 공공기관 이전 논의는 슬그머니 모습을 감췄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공공기관 유치를 둘러싼 지역 갈등에 대한 우려도 하나의 요인이 됐다. 결국 정부의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다.

이 같은 기류가 표면화된 것은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이 올 9월 가진 지역언론과의 간담회였다. 김 위원장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지난해에 청와대에 보고했고, 지난 4·7 보궐선거 전후 적절한 시기에 발표할 것으로 예상했다”면서도 “정무적 판단으로 미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여전히 수도권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긴다는 계획을 내놓는 것이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데다 유치를 둘러싸고 지역 간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대선 후보 공약, 과연 지켜질까

비수도권 지자체는 물론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에서 ‘공공기관 2차 이전 약속을 어겼다’는 반발이 쏟아지자 정부는 들끓는 민심을 진정시키려 나섰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올 9월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을 통해 “조만간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의지와 방향을 밝히겠다”고 이전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김 총리는 10월 문 대통령과 전국의 시·도지사들이 만나는 행사가 공공기관 추가이전 계획을 내놓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언도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 행사에서 부산·울산·경남 등 인접 시·도가 하나로 합쳐져 경쟁력을 높이는 초광역협력 지원전략을 내놓으면서 혁신도시 문제는 거론도 하지 않았다. 여당 인사들에 따르면 김 총리는 시간적 한계가 있더라도 이전 계획안을 발표하려는 의지가 강했으나 대선을 앞두고 여러 부작용을 우려하는 여권 핵심부의 반대 입장을 꺾지 못했다고 한다.

문제는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이 다음 정부에서는 가능하겠느냐는 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19일 “수도권에 남아 있는 공기업들, 공공기관들 200여 곳을 지방으로 다 옮기려 한다”면서 공약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도 아직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공공기관 이전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행보가 시작되겠지만 정권 초기에 수많은 국정과제를 제쳐 두고 이 문제에만 천착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더군다나 내년 6월 지방선거와 2024년 총선 등을 앞두고 새 정부가 지역 간 갈등의 뇌관이 될 수 있는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는 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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