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934 > 청개구리 언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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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밤새 식지 않는 차가움.’

어느 얼음매트 광고 문구인데, 거꾸로 됐다. ‘식다’가 ‘더운 기가 없어지다’이니, 저 선전 문구는 자기부정인 셈이다. 매트의 더운 기가 없어져야 하는데, 밤새 그렇지 않다니…. 한데, 알고 보면 저렇게 거꾸로 얘기하는 일이 드물지 있다.

“많은 문인들이 탄생하면서 시인이 오직 말할 수 있는 건 글이어야 하는데 어줍 잖은 말장난으로 글을 쓰고 대중 앞에 내놓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여기 나온 ‘어줍 잖은’이 바로 그런 예.(저렇게 띄어 쓰는 것도 잘못이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어줍다: ①말이나 행동이 익숙지 않아 서투르고 어설프다.(…/그 일을 안 한 지가 오래되어서 그런지 낯설고 어줍기만 하다./…) ②몸의 일부가 자유롭지 못하여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않다.(입이 얼어 발음이 어줍다./…) ③어쩔 줄을 몰라 겸연쩍거나 어색하다.(의자에 앉은 봉춘네는 어줍은 듯 옷고름으로 눈가를 닦는다.<박경리, 토지>/…)

이러니 ‘어줍잖다’는, 말이나 행동이 아주 부드럽거나, 몸의 움직임이 아주 자연스럽거나, 당당한 모습이라는 뜻이 된다. ‘어줍잖은 말장난’과는 정반대가 돼 버리는 것. 저 ‘어줍잖은’ 자리에는 ‘어쭙잖은’이 와야 했다. 표준사전을 보자.

*어쭙잖다: ①비웃음을 살 만큼 언행이 분수에 넘치는 데가 있다.(가난뱅이 주제에 어쭙잖게 자가용을 산대?/노인의 구시렁거리는 잔소리와 때로는 어쭙잖은 호령까지 들어 가며 함께 지낸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냐는 앙탈이었다.<전상국, 외딴길>) ②아주 서투르고 어설프다. 또는 아주 시시하고 보잘것없다.(왕한은 어쭙잖게 취직을 구하는 것보다 노동을 하는 것이 나으리라고 생각하였다.<한용운, 흑풍>/…)

한데, 이것도 약과랄까. 언론이 백이면 백, 거의 모두 거꾸로 쓰는 말이 있다. 아래는 기사 제목들.

<카불 함락 임박… 아프간, 월남 패망 데자뷔>

<13년 전 공포 ‘데자뷔’…‘헝다’ 주시하는 월가>

<2기신도시 데자뷔?…3기신도시 교통망 논란>

뭐, 대충 이런 식인데, 여기서 ‘데자뷔’가 엉터리인 것. 프랑스어인 데자뷔는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상황이나 장면이 언제, 어디에선가 이미 경험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이다. 우리말로는 ‘기시감’. 그러니,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아야 이 말을 쓸 수 있는 것.

한데, 우리 언론들은 이미 경험한 일에다가 마구잡이로 저렇게 데자뷔를 가져다 쓴다. 하지만 저 ‘데자뷔’들은 그저 ‘되풀이, 재탕’일 뿐이다. 멋있게 보이려고 어려운 말을 쓰다가 망한 셈이랄까.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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