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탐정 코남] #4. 해운대 '몸속로보트나가' 낙서의 비밀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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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사건 개요>

부산의 도시 전설 그 '끝판왕'을 찾아 나섰다. 바로 부산 곳곳에 그려져 있다는 정체불명의 문구 '몸속 로보트 나가'. 주로 해운대 일대에서 발견된다고 하는데.

10여 년 전 한 블로거는 이 글이 '대한민국 제1호 로보트를 만드는 비밀 연구소'에 들어가기 위한 주문이라고 적었다. 믿기 어려운 말이지만 지금도 SNS상에서는 종종 그 문구에 대한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과연 이 낙서는 연구소의 문을 여는 주문일까? 아니면 그냥 누군가의 장난스러운 낙서일까? 그리고 과연 2021년 현재, 아직까지 그 낙서는 존재하고 있을까?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에서 맹탐정이 직접, 그 문구를 찾으러 가봤다. (미리 말해 두자면 누가 이 문구를 썼는지 결국 밝혀내지 못했다.)


<현장검증>

구글에 '몸속 로보트 나가'를 검색해봤다.

현재 검색되는 블로그 글은 단 한 건. 문제의 글은 2010년 1월 30일 작성된 글이다. 블로거는 "1926년 부산 해운대구 신시가지 주공 2단지 아파트와 4단지 아파트를 연결하는 무지개 다리 밑 기둥 자리가 원래 대한민국 제1호 로봇을 만들기 위한 은밀한 연구소였다"며 "6·25전쟁이 일어나 그 연구실은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연구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또 연구소의 입구를 여는 암호가 '몸속 로보트 나가'라며 "지금도 그곳에서 그 암호를 외치면 그 주변 땅이 미세하게 흔들린다"고 적혀있다.


블로거의 말처럼 이 다리 밑에 비밀 연구소가 있었을까? 암호를 외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블로거의 말처럼 이 다리 밑에 비밀 연구소가 있었을까? 암호를 외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공 2단지, 4단지라는 구체적인 지명까지 언급되어 있다. 해당 장소로 가봤다. 과거와 달리 주공 2단지는 해운대센트럴파크로, 4단지는 좌동 뜨란채로 이름을 바꿨다. 대천호수에서 이어지는 춘천천이 두 아파트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춘천천 위의 여러 다리 중 '무지개다리'라고 이름 붙은 것은 없었다. 무지개다리라는 이름은 양운로 위 해운대센트럴파크와 대동아파트를 잇는 육교에 붙어있었다. 또 연구소 부지도 하천 아래보다 도로 아래가 더 적합해 보였다.


해운대 그린시티 주민들에게 물어봤지만 해당 문구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해운대 그린시티 주민들에게 물어봤지만 해당 문구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해당 장소에서 암호를 외쳐봤다. 아쉽게도 미동은커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지개다리 일대에서 문구를 발견할 수 있을까? 샅샅이 둘러봤지만 의미 없는 낙서만 있을 뿐 해당 문구는 발견하지 못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몸속 로보트 나가' 사진과 글을 분석했다.

광안대교~장산터널~ 송정터널로 이어지는 도로와 원동IC 근처, 두 곳에서 문제의 문구를 봤다는 글이 많았다. 먼저 송정터널로 향했다. 단서는 2008년도에 찍힌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었다. 몇 가지의 힌트가 보였다. 먼저 해운대 그린시티에서 송정 방향으로 차를 타고 가는 중 운전석 왼쪽에서 찍힌 사진이라는 것. 그리고 2단 콘크리트 옹벽 위 펜스와 속도제한·낙석 주의 표지판이 있는 도로라는 것이다.


송정터널 아래 문제의 문구를 찾기 위해 옹벽을 뒤졌다. 송정터널 아래 문제의 문구를 찾기 위해 옹벽을 뒤졌다.

비슷한 지점을 송정터널 입구 근처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옹벽의 형태, 무늬 등 모든 것이 일치했다. 문구를 찾기 위해 일대를 들쑤셨다. 그러나 모든 옹벽을 뒤졌으나 또 찾지 못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낙서 같은 것은 진작에 지워지고 없는 것일까? 부산의 도시 전설은 소문만 남긴 채 사라진 것일까? 맹탐정 일행은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장소, 원동IC 부근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도 찾지 못하면 '맹탐정'은 망한다.

눈을 부릅뜨고 반여동, 안락동 등 일대를 훑고 다녔다. 왕자맨션 삼거리를 지나 반여동 홈플러스에 들어가기 위해 원동IC로 향하던 길이었다. 순간 맹탐정의 눈에 흐릿한 낙서가 눈에 들어왔다. 커브길 연석 측면, 검은색으로 무엇인가가 적혀있었다. 글처럼 보이기도 했고 얼룩처럼 보이기도 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확인했다. 그리고 마침내 '몸속 로보트 나가'를 드디어 찾았다. 실존하는 도시 전설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드디어 반여고가교 아래에서 해당 문구를 찾았다. 드디어 반여고가교 아래에서 해당 문구를 찾았다.

기쁨도 잠시, 차를 멈출 수 없어서 번영로를 따라 계속 갔다. 홈플러스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어 저기 또 있다!!" 맹탐정 제작진 중 한 명이 큰소리로 외쳤다. 고개를 벌컥 쳐들었다. '몸속 로보트 나가' 문구를 발견했다. 위치는 반여고가교 아래 시멘트벽. 조금 전 발견한 것보다 훨씬 크고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몸속 로보트 나가' 문구에 담긴 비밀

먼저 크기가 작은 문구부터 살펴봤다. 도로와 인도를 구분하는 연석 측면에 적혀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림으로 착각할 정도로 글씨가 많이 뭉개져 있다. 좁은 공간에 글을 쓴 탓으로 생각됐다. 누군가 검은 락카로 급하게 적은 느낌이었다. 군데군데 락카칠이 흘러내려 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급하게 휘갈겨 쓴 '몸속 로보트 나가'. 도로 옆 연석에 쓰여져 있었다. 누군가 급하게 휘갈겨 쓴 '몸속 로보트 나가'. 도로 옆 연석에 쓰여져 있었다.

몇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 문구가 발견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는 2000년 초반이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색이 바래거나 지워진 곳이 없었다. 누군가 계속 덧칠을 한 것일까? 또 특이한 것은 문구가 있는 장소가 보행자진입금지 표지판이 세워진 곳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의 통행이 금지된 곳에, 그것도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크기로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의문을 품은 채 두 번째 문구를 살펴봤다.



멀리서도 문구를 알아볼 수 있도록 크고, 또박또박 쓰여져 있다. 멀리서도 문구를 알아볼 수 있도록 크고, 또박또박 쓰여져 있다.

문구의 크기는 가로 약 2.5m 정도로 꽤 큰 편이었다. 그러나 고가교 아래, 해가 들지 않는 곳에 자리해 유심히 보지 않으면 문구의 존재를 모르고 지날칠 수 있어 보였다, 첫 번째 발견한 것과 달리 대충 쓴 느낌은 없었다. 자음과 모음이 겹치거나 락카가 흘러내린 곳도 없이 깨끗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썼다는 게 느껴졌다. 한가지 공통점을 찾자면 두 문구 모두 차량 운행이 많은 곳이지만 사람은 다닐 수 없는 곳에 적혀 있다는 것이다. 유추해보자면,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길 원했지만 최대한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어 훼손의 우려가 없는 곳에 문구를 남긴 것 같았다.


사라진 '몸속 로보트 나가'

송정터널에 있었던 문구는 맹탐정이 못 찾은 게 아니라, 지워진 것은 아닐까? 첫 번째와 두 번째 문구를 발견하고 나서든 생각이었다. 지워진 문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 포털사이트 거리뷰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과거 사진까지 모두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날짜를 2021년 2월로 두고 송정터널 인근을 샅샅이 뒤졌다. 역시나 찾을 수 없었다. 송정터널 인근 '몸속 로보트 나가' 블로그 포스팅 날짜는 2008년 1월 15일이다. 거리뷰 프로그램을 2008년으로 설정했다. 사라진 문구가 마법처럼 나타났다. 위치는 송정어귀삼거리를 지나 송정터널로 올라가는 길목이었다.


거리뷰 프로그램을 통해 사라진 '몸속 로보트 나가' 문구를 되찾았다. 거리뷰 프로그램을 통해 사라진 '몸속 로보트 나가' 문구를 되찾았다.

언제까지 문구가 있었을까? 거리뷰 프로그램에 따르면 송정의 '몸속 로보트 나가'는 세월이 흐르며 서서히 지워졌지만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존재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2017년 5월, 문제가 생겼다. 송정터널 앞 도로가 왕복 6차선에서 8차선으로 확장공사에 들어간 것이다. 도로 폭을 늘리면서 새로 옹벽을 세우게 됐고, 기존에 문구가 적혀 있는 옹벽이 통째로 없어진 것이다.


옹벽에 있던 문구는 도로 확장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옹벽에 있던 문구는 도로 확장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사건은 미궁속으로>

'몸속 로보트 나가'는 누가 썼을까?

(*맹탐정 개인 의견임. 부산일보의 편집 방향과 무관함.)

거리뷰에 남아있는 사진과 원동IC 근처에서 발견한 문구를 비교해봤다. '몸' 자와 '속' 자 모음의 높낮이, '로보트' 단어 모음의 기울어짐 정도를 살펴봤다. 동일한 사람이 썼다는 건 쉽게 추정할 수 있었다. 송정터널 '몸속 로보트 나가'의 위치가 확인되면서, '사람이 잘 다니지 않지만 차는 많이 다니는 장소에 쓰였다'라는 공통점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드러났다. 쓰인 장소나 형태 등을 보면 단순히 어린애 장난으로 치부하기엔 어려워 보였다. 조현병이나 기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소행은 아닐까? 해당 문구를 계속 봐야만 하는 강박증의 일종은 아닐까? 해운대정신건강센터 관계자는 "단순히 동일한 낙서를 한다는 것으로 정신질환을 의심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관할구청 또한 해당 문구에 대해 "정확한 내용은 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몸속 로보트 나가'를 쓴 사람은 누구일까? 맹탐정은 어렵사리, 오래전 이 문구가 비밀연구소를 여는 암호라고 썼던 블로거와 접촉할 수 있었다. 사실은 이 블로거가 적은 것은 아닐까? '몸속 로보트 나가'의 비밀은 밝혀질까? A 씨는 "중학교 시절 블로그에 그런 글을 쓴 건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직접 '몸속 로보트 나가'를 해운대 일대에 적었나?"라는 질문엔 단호히 "아니다 내가 적은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A 씨는 "그때 당시 장산에 살았었는데, 친한 친구들끼리 떠들던 내용을 호기심에 적었다"라고 밝혔다. 또 "출처는 확실하지 않다, 나도 누가 그런 문구를 적었는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맹탐정이 찾은 곳은 두 곳이지만, 부산 곳곳 문제의 문구들이 더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문구의 존재는 확인했으나 문구의 비밀을 파헤치기는 힘들었다. 해당 문구를 쓴 사람이나 문구에 얽힌 사연을 알고 있다면 제작진에게 연락해주길 바란다. 시민들의 많은 제보를 기다리겠습니다. 제작=정수원 PD·이지민 에디터·홍정민 대학생인턴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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