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관계를 성찰하는 코미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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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를 맺고, 끊고 그 사이에서 오해를 하고 푼다. 어쩔 땐 관계 그 자체가 절망일 때도 있다. 관계는 쌍방향이어야 하는데, 어느 한쪽이 상대에게 마음을 강요해 힘들기도 하다. 혹은 이미 끝난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시시때때로 마음이 돌변해 상대를 괴롭히는 일방적인 관계도 있다. 자신은 그 마음을 일컬어 사랑이나 애정이라고 명명하지만, 상대는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걸 잘 모른다. 혹은 어떤 관계는 여러 마음에 생채기를 만들기도 한다. 관계를 맺기도, 관계를 끊기도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하는 영화를 보았다.

배우 겸 감독 조은지 첫 상업영화
류승룡표 코미디 ‘장르만 로맨스’
사랑 및 관계맺기 중점 둔 이야기

주인공 둘러싼 다양한 인물 군상
고등학생·성소수자·유부녀…
개성 잘 살려 캐릭터 완성도 높아

한 때 천재라 불리던 소설가 ‘김현’. 올해는 꼭 신작을 발표해야 위약금도 안 물텐데 김현은 벌써 7년째 글을 못 쓰고 있다. 얄미운 후배 소설가가 권위 있는 문학상 후보가 되자 그는 더 애가 탄다. 그때 제자 ‘유진’이 현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한 번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았던 현은 성소수자 유진이 난감할 뿐이다. 엮이고 싶진 않지만 현은 유진의 소설을 읽은 후 그 실력을 외면할 수 없어 공동집필을 제안한다. 현은 유진의 집에 기거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고 마치 신인으로 돌아간 듯 자극을 받는다. 하지만 한편으론 유진의 시선이 현에게 고정되어 있어 불편하기도 하다.

글을 좀 쓰려고만 하면 이혼한 전 부인 ‘미애’가 현에게 전화해 아들 ‘성경’의 상담을 부탁한다. 헤어진 부부는 아들 일로 만남을 이어가던 중, 선을 넘을 뻔하는 사고가 일어나고 설상가상 침대에 있는 두 사람을 성경이 보고 충격을 받는다. 성경이 부모의 스킨십에 민감한 이유는 현은 이미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미애는 현의 오랜 친구이자 출판사 대표인 ‘순모’와 몰래 연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방황하던 성경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옆집 누나 ‘정원’의 집으로 간다. 친절한 정원의 행동을 사랑이라고 확신한 성경은 정원에게 고백을 하지만 그녀는 이미 결혼한 유부녀다.

‘장르만 로맨스’는 말 그대로 겉보기만 로맨스일 뿐 사랑 영화는 아니다. 무겁고 어려운 삶의 무게를 사랑 또는 관계맺기라는 방식을 통해 가볍게 포장하고 있을 뿐 쉽지 않은 주제를 다룬다. 현은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소설가이지만 이혼과 재혼으로 책임감을 느끼는 가장이며,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사랑을 밝히지 못하는 연인이 등장하며, 유부녀를 사랑하게 된 고등학생의 감정을 포착하며, 성소수자의 사랑까지 그들은 아무리 눈길을 주어도 돌아보지 않는 사랑 혹은 생활을 하고 있다. 이때 영화 속 인물들의 시선은 어긋나고 비껴나지만 영화는 뻔하게 풀지 않는다. 유쾌한 리듬으로 어쩌면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이야기에 천천히 다가간다. 그 과정에 코미디는 덤이다.

영화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어 소란스러울 수 있다. 그럼에도 감독은 인물들을 포기하지도, 그들의 개성을 소거시키지도 않는다. 인물들 간의 관계 설정을 통해 각각의 개성이 잘 드러나도록 자리를 마련한다. 그로 인해 분량이 많지 않아도 인물 모두 자신의 ‘색’이 잘 묻어나는 캐릭터를 완성한다. 특히 김현을 중심으로 인물들이 연결되기에, 현을 연기한 배우 류승룡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유진의 고백을 능청스럽게 회피할 땐 웃음을 유발하며, 진중하게 사랑을 거절할 땐 울림을 주는 등 막장 관계의 이면을 코미디로 이해시키고 공감 가능케 한 건 류승룡이기에 가능하다. 게다가 전작 ‘극한직업’에서 보여주었던 코믹 연기와 달라서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배우 출신 조은지 감독의 첫 상업영화다. 그녀는 이미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는 등 연출력을 인정받았지만, 이번 영화로 더 주목받는 신예감독으로 나아갈 것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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