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42) 다채로운 빛으로 엮어낸 화면, 이준 ‘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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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藍史) 이준(1919~2021)은 한국 추상미술의 1세대 화가이다. 기하학적 선과 면의 형태로 구성된 화면을 선보이며 추상미술을 향한 열정과 탐구를 멈추지 않은 작가다. 이준은 작가로 활동하면서도 중·고등학교 미술 교사를 거쳐 이화여대 미술대학 교수와 학장을 지냈다. 30년에 걸친 교직 생활을 통해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이준은 경남 남해 출생으로 1942년 일본 태평양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김환기, 유영국, 한묵 등과 함께 비구상회화를 제작했다. 1950년대 작품은 일본 유학 시절의 영향이 짙게 드러나는 인상주의적 시각과 야수파적인 색채가 혼합된 화풍을 보여줬다. 1960년대 이후 작품은 당시 한국화단에서 유행한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아 비정형적인 화면과 마티에르가 강조된 표현적 추상회화로 변화했다. 이 시기 작품은 자연의 이미지를 추상적인 형태와 색채로 다루고 있는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절제된 표현과 균형 있는 화면을 통해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확실한 전환을 드러낸다.

자연의 이미지를 기하학적 선과 면으로 구성하고 있으면서도, 특유의 서정적이고 따듯한 색채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준의 대표적인 추상화풍은 1970년대에 이르러 등장한다. 이후로도 그는 무수한 색띠들로 세밀하게 직조한 색면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예술 세계의 근원”이라 언급하던 고향 남해의 빛과 풍경을 지속해서 탐구해나갔다. 남해 특유의 밝고 화사한 햇빛은 화려하고 섬세한 색띠들로 곧게 뻗어나가며 화폭 안에서 기하학적인 형태와 색면으로 변모했다.

이준의 ‘추상’(1982)은 녹색 톤 화면 위에 원, 삼각형, 색띠가 교차된 화면을 보여준다. 화면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화사한 색띠를 통해 다채로운 빛의 스펙트럼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 특유의 밝고 화사한 색채감각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수직·수평으로 마치 직조된 듯한 색띠들이 기하학적 형태와 색면을 형성하면서 화면 내부에 리드미컬한 율동감을 불러일으킨다.

조민혜 부산시립미술관 기록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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