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조각낸 동물의 존재, 이어 붙여 새로운 관계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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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 / 향기·은영·섬나리

2017년 개봉된 ‘옥자’라는 영화가 있었다.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는 영화 ‘옥자’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2019년 7월 경기 화성시의 어느 돼지 농장에서 아기돼지가 태어났다. 동물권 단체 직접행동DxE(Direct Action Everywhere)는 오물과 쓰레기, 악취로 가득한 분만사에서 그 아기돼지를 구출했고, 이후 ‘새벽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분만사서 구출된 돼지·동물 활동가 얘기
비인간적 동물권에 대한 실체·의미 담아

이 책은 한국 최초로 축산업에서 공개구조 된 돼지 새벽이와 이를 가능케 한 활동가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제 더는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은 수많은 동물에 대한 기록들이 수록돼 있다. 저자는 직접행동DxE 활동가들이다. 이들은 별다른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동물해방이라는 대의 아래 모였다. 그 계기는 도살장 앞 동물들을 지속해서 만난 공통의 경험이 작용했다. 폭력적인 시스템에 대한 강력한 문제의식이 이들을 모은 셈이다.

책은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는 새벽이를 직접 구조했으며 구조 이후 1년간 새벽이와 가장 가까운 시간을 보낸 활동가의 기록이 담겨 있다. 2부에서는 새벽이의 존재로 인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한국 최초 생추어리(Sanctuary·위급하거나 고통스러운 환경에 놓여 있던 동물이나 야생으로 돌아가기 힘든 상황의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구역)의 초기 설립 과정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생추어리를 설립하면서 느꼈던 활동가들의 고민과 걱정, 불안 등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3부에서는 활동가들이 공개구조를 다짐하게 된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부에서는 비인간 동물들이 전한 동물해방의 의미를 기록했다.

세상은 새벽이를 삼겹살, 목살, 항정살, 갈매기살과 같은 ‘고깃덩어리’로 조각낸다. 새벽이를 부위별로 조각내, 살점의 위치 그리고 식감에 따라 분류한다. 책은 사회가 조각낸 동물의 존재를 이어 붙여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보여주고 이야기한다.

동물권에 대한 담론이 뜨거운 요즘, ‘고기’가 될 운명을 부수고 새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새벽이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동물권의 최전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가 가두어두고 경멸하는 동물들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빼앗은 것인지, 무엇을 잃은 것인지, 이 책은 애써 외면해왔던 진실을 하나씩 들춰낸다.

비난은 쉽고, 이해와 공감은 어렵다. 특히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 역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모두가 동의하는 세상의 이치에 의구심을 품을 때, 상상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미래를 감히 떠올려 볼 때, 혼란은 필연적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언제나 이러한 혼란과 잡음, 소란스러움, 흔들림 속에서 조금씩 나아지곤 했다.

이 책은 육식이냐 채식이냐 이분법적인 잣대를 내밀고 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너무 쉽게 손가락질하고 비난했던 어떤 이야기에 대해,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들어보길 권유한다. 그 불편함을 감내하고 이들에게 귀 기울인다면, 우리는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향기·은영·섬나리 지음/호밀밭/236쪽/1만 4000원. 정달식 선임기자 do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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