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기마인물형토기는 주전자가 아니라 등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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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씨는 최근 학술지를 통해 ‘신라시대 기마인물형토기 용도는 주전자가 아니라 등잔이었다’는 글을 발표했다. 사진은 기마인물형토기 모사품에 관솔심지 등불을 켠 모습. 작은 사진은 국보인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김정수 제공·문화재청 홈페이지

일제강점기인 1924년 경주시 금령총에서 말을 타고 있는 주인상과 하인상(종상) 모습의 한 쌍의 신라시대 토기가 출토됐다.

주인상은 높이가 23.4cm이고, 길이가 29.4cm이며, 하인상은 높이가 21.3cm, 길이가 26.8cm였다. 이들 토기는 겉으로 보기엔 말을 탄 사람을 형상화한 장식용 조각처럼 보이지만 용도는 명기(明器·장사 지낼 때 죽은 사람과 함께 묻는 기물) 또는 주전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산대 고고학과 박사 수료 김정수 씨
학술지 ‘야외 고고학’에 관련 글 게재
모형 통한 용도 실험·사용흔 등 분석
실생활에서 사용됐던 등잔으로 추정
기존 명기 또는 주전자 용도설 뒤집어
금령총 토기, 제기 기능도… 논란 여지


이는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가 ‘빛의 과학,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통해서도 이러한 사실을 밝혀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말 등에 있는 깔때기 모양 구멍에 물이나 술을 넣으면 말 가슴의 대롱으로 따를 수 있다면서 토기 속에 담을 수 있는 액체의 양은 240㏄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주전자 용도였을까?

이에 대해 국보 ‘기마인물형토기’의 용도는 명기나 주전자가 아니라 등잔이었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돼 고고·역사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학술지 ‘야외고고학’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부산대 고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김정수 씨의 ‘신라 기마인물형토기의 용도에 관한 소고’라는 40쪽이 넘는 분량의 글을 제41호(7월 판)에 게재했다. 학술지 야외고고학은 연 3회(3월, 7월, 11월 말) 정기적으로 발간한다.

그는 학술지에 게재한 글에서 국보 제91호 ‘기마인물형토기’의 용도가 주전자가 아니라 등잔이라는 것을 ‘기마인물형토기’의 사용흔(使用痕) 분석과 이와 비슷한 크기의 모형을 통한 용도(주전자·등잔) 실험을 통해 주장했다. 이는 종전 기마인물형토기의 명기 또는 주전자 용도설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다.

먼저 모형을 통한 용도 실험 결과 △주입구 잔에 물을 넣으면, 곧바로 주 출구로 동시에 물이 뿜어져 나옴 △주입구 잔에 물을 부어 넣으면 공기방물이 생겨 물을 채우는 시간이 오래 걸림 △토기 내 내용물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적음(보통 주전자의 용량은 1000cc가 넘지만, 이 토기는 240cc에 불과) △토기에서 손잡이가 될 만한 꼬리 부분이 있지만 한 손으로 쉽게 잡고 따를 수 없음 △토기의 외부 꾸밈이 복잡하고 장식이 많아 주전자로 사용하기에는 거추장스러운 구조 △주전자로 사용하기에는 주입구가 좁고, 내부를 깨끗이 씻을 수 없는 비위생적인 구조 등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주전자 용도로는 적절치 않지만, 등잔으로 사용하기에는 오히려 적절한 형태라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주입구 잔에 물을 넣으면, 곧바로 주 출구로 동시에 물이 뿜어져 나오는 구조’는 주전자 용도로는 비합리적이지만, 등잔일 때는 기름을 심지를 넣는 주 출구 쪽으로 자동적으로 밀어주는 합리적 구조라는 것이다. 그는 또 “기마인물형토기는 말등에 있는 물을 주입하는 잔의 형태가 적절하지 않다. 음료를 부으면 거기에 붙어 있던 먼지를 다 닦으면서 몸통으로 들어가는 비위생적인 형태다. 따라서 위생 기능에 문제가 발생하는 주전자로는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기마인물형토기의 부리 끝 단면이 지면과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는 것도 이 토기의 용도가 주전자 부리가 아니라 등잔 부리로 사용됐음을 확정 지을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김 씨는 모의 등잔 실험 후 모사품 표면에 생긴 등잔 사용흔과 동일한 현상을 실제 기마인물형토기 유물에서도 관찰할 수 있었다면서 이는 실제로 이 토기가 등잔으로 사용했음을 드러내는 확실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국보 제91호 ‘기마인물형토기’ 뿐만 아니라 기마인물형토기라고 할 수 있는 미추왕릉 발굴 신귀형토기,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1호 기마인물형토기, 경산시 임당동 저습지 유적 출토 기마형토기, 경주 교동 천관사지 기마인물형토기 등의 용도도 명기나 주전자가 아니라 모두 등잔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근거를 제시했다. 그는 “특히 임당동 저습지 유적 출토 기마형토기는 제사 의식과 관련 없는 실생활에 사용되었던 유물들도 대거 이 유적지에서 나와, 죽은 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태우고 가는 의미로 무덤에만 부장 하던 명기 또는 제기가 아님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또 덕천리 1호 기마인물형토기가 등잔형토기와 함께 출토된 점, 천관사지 출토 기마인물형토기 대롱관에서 목질(木質)이 발견된 점은 이들 토기의 용도가 주전자가 아니라 등잔이었음을 말해주는 증거들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씨의 이런 주장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국보 제91호 ‘기마인물형토기’처럼 금령총(무덤)에서 출토돼 실생활에서는 등잔으로 사용됐을지라도 엄연히 명기 또는 제기(祭器)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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