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기억되어야 할 장기기증자들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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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상 사회부 행정팀 기자

타인의 생명을 구한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이 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한 고 이태석 신부의 삶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이기심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짙은 여운을 남긴다. 지난해 12월 부산 강서구에서 폭발 직전 차량 문을 부수고 가까스로 시민을 구한 강서경찰서 박강학 경감의 용기는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만들고, 경이감을 불러온다.

그러나 생명을 구하는 일이 꼭 특별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생명나눔에 동참할 수 있다.

올해 ‘장기기증.com’이라는 사이트가 문을 열었다. 한국장기기증협회가 만든 장기기증자들을 위한 온라인 추모관이다. 생긴 지 몇 달 되지 않아, 아직 콘텐츠는 부족하고 방문자도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장기기증자에 보낸 ‘추모편지’는 묘한 뭉클함을 준다. 편지라기보다는 기증자들을 그리워하며 몇 줄 쓴 짧은 메모에 가깝다.

어느 기증자의 친구는 “나 장가간다. 사고 친 거 아니니 걱정 마라”며 농담을 하면서 “식장에 하늘나라 친구들 데려와라”고 했다. 아마 이 기증자는 젊은 나이에 생명을 나눠준 듯하다. 한 기증자의 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도 친구들 많이 사귀고 있지. 넌 인기쟁이라 아빠는 걱정이 없단다”고 편지를 남겼다. 아마 기증자는 10대였던 것 같다.

한 기증자의 어머니는 “벌써 가을이야 아가. 작은 발로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밟고서 낙엽이 바삭하다는 말을 했을 땐 아빠도 엄마도 참 많이 웃었지”라며 “또 올게. 거기서 잘 놀고 있어. 가끔 엄마 꿈에도 놀러 와”라고 그리움을 표현했다. 기증자는 걷고 말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듯했다.

종교에서 말하는 영혼이 되었든, 과학자들이 자아라고 부르는 인지체계가 되었든, 인격체는 죽으면 몸을 떠난다. 그러나 영혼과 몸이 별개라는 걸 알고 있다 하더라도, 모두가 죽음 뒤 육신을 생명 나눔에 선뜻 내놓지는 않는다. 많은 이들이 장기기증의 고귀한 뜻에는 동의하면서도, 막상 서약에 사인까지 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가족의 일이라면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먼저 떠난 가족의 흔적을 그의 몸에서 찾으려 할 수도 있고, 왠지 고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년 5000~6000명 정도의 뇌사자가 발생하지만, 실제 장기 기증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400~500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만큼 막상 장기기증을 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의미한다. 죽음과 싸우고 있는 어느 장기기증 대기자와 그의 가족들을 도와주겠다는 선한 마음이 있어야, 장기기증서에 서약하고 가족의 수술을 승낙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최근 <부산일보>에 1년여 전 교통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뒤 9명에게 생명을 나눠주고 별이 된 김채희(22) 씨의 사연이 실렸다. 많은 독자와 네티즌들이 채희 씨와 가족의 선행에 감동과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한편으로는 9명의 생명을 구한 이야기가 1년여 동안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의아스럽기도 하다. 우리가 생명을 살리려 큰 용기를 낸 이들을 얼마나 기억하려 노력했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k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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