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당, 지금이 노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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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금시당·영남루 늦가을 풍경

스한 늦가을 햇살의 손을 잡고 밀양강 강둑을 따라 산책에 나선다. 다정한 모습이 보기에 좋았던지 평소 시샘이 많은 바람은 기가 꺾여 강 건너편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다. 오늘의 행선지는 ‘SNS에 올리기 좋은 가을 사진’으로 유명한 두 곳이다. 은행나무로 유명한 활성동 금시당과 아랑의 전설로 널리 알려진 영남루다.


두 곳 SNS에 올리기 좋은 가을 사진으로 유명

수령 500년 금시당 은행나무 풍취 느끼는 시기
바닥에 쌓인 잎, 담장 밖 밀양강 둔치 잡초와 대비

영남루 난간서 밀양강 내려 보니 세상 멈춘 듯
누각 뒷문 쪽 박시춘 작곡가 어릴 적 살던 집 있어


■금시당·백곡재

강둑이 끝나는 지점에 아주 짧은 산길이 나타난다. 끝 지점에는 나무 사이에 가려진 한옥 한 채가 보인다. 이곳이 바로 11~12월만 되면 전국에서 사진을 찍으러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금시당·백곡재다.

금시당은 조선 명종 때 좌부승지를 지낸 이광진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고향에 돌아와 1566년에 건설한 별장이다. 금시당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지만 이광진의 5대 후손인 이지운이 1744년에 복원했다. 백곡재는 금시당을 재건한 이지운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1860년에 세운 재사다.

이광진의 호이기도 했다는 금시당이라는 이름이 심상치 않다. ‘금시(今是)’는 ‘지금이 옳다’는 뜻이다. 중국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나오는 ‘각금시이작비(覺今是而昨非·지금이 옳고 과거는 틀렸다)’에서 따온 표현이다. 혼란에 휩싸인 2021년의 사람들에게 던지는 의미가 적지 않다.

건물만 놓고 보면 금시당과 백곡재는 사실 다른 곳의 고택보다 더 흥미롭거나 이색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금시당 정원에 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다. 이광진이 별장을 만들 때 심은 것이라고 하니 수령이 500년 가까이 된 셈이다. 어른 세 명이 팔을 둘러야 잡을 수 있는 은행나무 굵기를 보면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은행나무 잎은 이미 대부분 떨어졌다. 금시당 후문 담장 쪽 나뭇가지에만 일부분이 남아 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은행나무의 풍취를 더 짙게 느낄 수 있는 시기다. 땅에 떨어져 노란 눈처럼 쌓인 잎 덕분이다. 은행나무에 잎이 무성히 달렸을 때보다 지금처럼 땅바닥을 노랗게 뒤덮은 상황이 금시당을 더 환상적이고 신비한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금시당 정원은 마치 노란 물감을 쏟아 부어 온 세상이 노랗게 변한 느낌을 준다. 나무가 얼마나 크고 잎이 무성했기에 바닥에 이렇게 많은 잎이 떨어질 수 있는 것일까? 낮은 담장 밖으로 보이는 밀양강 둔치의 누렇게 마른 잡초와는 완벽하게 대비를 이루는 색이다.

나이가 500년을 넘은 굵은 나무 한 그루, 까만 기와로 윗부분을 덮은 황토 흙담 그리고 그다지 화려하지도 눈부시지도 않게 수수한 모습으로 나무와 담장 너머를 묵묵히 바라보는 금시당과 백곡재. 곳곳에서는 쉴 새 없이 찰칵거리는 휴대폰 카메라 소리가 터져 나온다.

모두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금시당 마루에 앉아 사람들의 밝은 미소와 환한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을 동시에 느껴본다. 마루 안쪽 사랑방에서는 옛 선비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광진이 방에 앉아있다면 왜 호를, 그리고 이 건물의 이름을 금시당이라고 지었는지 물어보고 싶다.

■영남루

금시당을 거친 밀양강은 남쪽으로 굽이굽이 흐르고 흐르다 갈라져 작은 섬을 하나 만들었다. 지금은 삼문동이라는 행정구역으로 불리는 곳이다. 섬이 생긴 덕분에 주변의 풍광은 한층 더 아름다워졌다. 옛 사람들은 섬 맞은편 언덕에 시원한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누각을 만들었다.

신라 경덕왕(재위 742~765년) 때 처음 건설했다고 하니 그 이후 흐른 세월만 1300년 가까이 돼 가는 셈이다. 이후 고려 공민왕(재위 1351~74년) 때 중건해 이름을 영남루라고 지었다. 조선시대에는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3대 명루로 이름을 떨쳤다.

영남루의 참맛은 누각에 올라가봐야 알 수 있다. 누각에 드러눕기 가장 좋은 시기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한여름이지만, 완전히 추워지기 전인 가을은 SNS에 잘 어울리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시기이다.

‘영남제일루’라고 쓴 현판을 뒤로 하고 누각 난간 아래로 흐르는 밀양강을 내려다본다. 누각을 에워싼 대나무와 각종 나무가 적당히 강을 가리고 있다. 강물은 마치 그 자리에 고인 듯 아주 느릿느릿하게 흘러간다. 강 건너편 둔치의 마른 잔디밭은 물론 세상 어디에도 움직임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강물의 흐름뿐 아니라 세상이 온전히 멈춰버린 느낌이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영남루 기둥에 잠시 등을 기대고 앉는다. 40년 전 학교에 다닐 때 해마다 봄이 되면 이곳에서 열렸던 ‘백일장 대회’에 참가해 문장을 짜내면서 강 아래를 물끄러미 쳐다 보던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세월은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눈을 속이고 몰래 쏜살같이 흐르고 있었다.

영남루 뒷문 쪽에는 가요 ‘애수의 소야곡’을 작곡한 밀양 출신 작곡가 박시춘이 어릴 때 살았던 집이 복원돼 있다. 하루 종일 집 주변에서는 처량한 곡조의 노래가 흘러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뒷문으로 나와 밀양강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가면 빨간 단풍이 곱게 물든 나무가 고개를 삐죽 내민 사당이 나타난다. 조선 명종(재위 1545~67년) 때 정절을 지키려다 살해당한 전설의 주인공 아랑을 모신 곳이다. 아랑이 혼령으로 나타나 부사에게 원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는 전설은 정말 유명한 이야기다.

사당에는 아랑의 초상화는 물론 그녀의 전설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사당 뒷문으로 나가면 아랑이 목숨을 잃은 장소에 그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1910년에 세운 작은 비석 하나가 보인다. 비석 주변을 도는 바람에 사각거리는 대나무 잎사귀 소리는 한맺힌 아랑의 울음소리처럼 들린다. 마음 속으로 그녀의 한을 달래주는 인사말을 남기고 밀양의 늦가을 풍광 여행을 마감한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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