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내년 대선 ‘대한민국 에너지 방향’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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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원전 정책… 지방은 생각도 안 했다

접전 양상인 내년 대선을 두고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럴수록 후보들의 정책을 잘 살펴야겠다. 후보들의 에너지 정책은 선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특히 주목 대상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신재생에너지를 강조한다. 반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탈원전 정책의 폐기를 주장하는 친원전파이다. 에너지 정책은 외국에서도 정권 성향에 따라 휘둘리는 경향이 있다. 후보들의 에너지 정책은 대선 표심을 좌우할 주요 이슈. 심지어 내년 대선은 원전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 성격도 가지고 있다. 주요 선진국들의 에너지 정책에는 어떤 변화가 있으며, 원전 정책이 지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제대로 알아야겠다.

이 “추가 원전 건설 없다”
윤 “탈원전은 실패한 정책”
안 “전략사업 키워 수출 박차”
심 “핵발전 주장, 파멸주의”
독, 탈원전 흔들림 없이 추진
영·프, 원전산업 살아날 조짐
대만, 18일 국민투표로 결정
고리원전, 세계 최고 밀집도
사용후핵연료 처리 발등의 불
지역에 미칠 영향 깊게 고민을


신재생에너지 vs 친원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를 잇는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 후보는 지난 8월 국회 기자회견에서 “추가 원전 건설은 안 하는 게 맞는다. 이미 가동하거나 건설한 원전은 사용 기간 범위에서 충분히 사용해야 한다”라고 했다. 또한 이 후보는 “전국 어디서나 신재생에너지를 생산·유통·판매할 수 있게 하면 에너지 자립과 탄소중립 조기 달성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 사용이 예정된 2080년까지 더 싸고 안전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 후보는 원전에 대한 이전의 더 강경한 입장에서 다소 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당내 경선 도중에도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 “탈원전 계승 협약서를 맺자”고 하자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일찌감치 탈원전의 반대쪽에 자리를 잡았다. 검찰총장을 그만둔 것도 월성원전 수사 압박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했다. 윤 후보는 “탈원전과 같은 실정(失政)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차기 대선에서 확실히 정권을 바꾸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윤 후보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설계비용도 다 들어갔고, 건설도 시작됐다가 중단된 원자력발전소는 다시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윤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건설이 중단된 경북 울진의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이 재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가에서는 이 후보가 당선되면 신재생에너지, 윤 후보가 당선되면 원전과 대형 건설주를 수혜주로 꼽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강력 비판한다. 안 후보는 “우리 여건에서 원전 없이 신재생에너지만으로 탄소중립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형모듈원전(SMR)을 개발해 원전 기술을 국가전략사업으로 키워 수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윤 후보를 향해 “탈원전이 포퓰리즘이면 핵발전은 파멸주의”라고 비판했다. 심 후보는 신재생에너지를 강조하면서도 지금 당장 탈원전하자는 주장을 펼치지는 않는다. 2050년까지 노후화된 원전은 없애고, 신규 원전을 짓지 않으면서 기존 원전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유지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vs 영·프 서로 다른 길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직후 이탈리아와 스위스는 국민투표로 탈원전을 결정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는 대만과 독일이 탈원전으로 돌아섰다. 독일은 현재 탈원전 최고 모범 국가로 꼽힌다. 보수연정 지도자였던 메르켈 총리는 이전의 진보정부가 수립한 탈원전 정책에 제동을 걸고 원전 수명을 연장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2022년까지 원전 완전 퇴출을 선언했다. 2010년 독일 전기 생산량의 22%였던 원전 비중은 2020년 11%로 줄었다. 지난 9월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이 녹색당·자유민주당과 함께 구성한 3당 연립정권의 합의문에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전력의 80%를 생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메르켈은 물러났지만 탈원전 계획은 흔들림 없이 추진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과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새로운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영국은 자국 기업의 소형 원자로 개발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2017년 취임하며 원전 비중을 50%까지 줄이겠다던 공약을 뒤집은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원전 강화 정책은 최근 에너지 위기로 인한 전력 가격 급등과 신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퇴조기로 접어들던 유럽의 원전 산업이 에너지 위기와 탄소 감축 압박으로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봉인된 원전 운영 정상화 문제 등을 두고 18일 국민투표를 치르는 대만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주목의 대상이다.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걸고 2016년 대선에서 당선된 차이잉원 총통은 2025년을 목표로 탈원전을 추진해 왔다. 이번 국민투표는 후쿠시마 사고의 여파로 거의 완공된 상태에서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된 제4 원전의 상업 운전을 시작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대만에서는 제4 원전을 제외한 나머지 원전들은 노후화해 이미 가동을 중단했거나 곧 가동이 중단될 예정이다. 제4 원전 가동 관련 안건은 차이잉원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 정권의 탈원전 정책 유지 문제와 직결된다. 민진당과 제1야당인 국민당은 이번 국민투표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원전 정책, 지방이 안 보여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가 후쿠시마 사고 당시를 회고한 책에는 “나는 도쿄전력의 원전이 후쿠시마현에 이렇게 집중적으로 설치된 것이 새삼 놀라웠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원전이 한 부지에 많이 몰릴수록 위험은 커진다.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단지는 고리원전. 원자로 수가 총 9기에 달하는 고리원전 반경 30㎞ 내에 거주하는 인구는 382만 명에 달한다. 후쿠시마 원전(17만 명)보다 20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우여곡절 끝에 신고리 5·6호기 공사도 재개됐다. 그린피스는 고리원전에 대해 “전 세계에서 원전이 6기 이상 몰려 있는 단지 중에서 주변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고리원전뿐 아니라 한울원전(세계 3위) 한빛원전(4위) 월성원전(7위)의 밀집도 역시 최상위권이다. 세계 원전 밀집도 상위 10곳 중 4곳이 우리나라에 있다.

대한민국의 원전은 모두 지방에 있다. 서울의 전력자급률은 12.7%, 다른 지역으로부터 전력을 가장 많이 수혈받는 곳은 경기도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런데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전 소재지인 기장으로의 이전 요구를 끝내 묵살했다. 원안위가 원전 비상시 신속한 대응을 위해 서울역 근처로 옮겼다는 소식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많이 허탈하게 만든다. 고리원전 1~4호기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는 총 저장 가능 용량이 93.3%에 달해 이미 목구멍에 찬 상태이다. 이처럼 폐기물 처리 방안이 ‘발등의 불’이지만 반출 방법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 자칫하면 부울경이 사실상 영구 핵폐기장이 될 판이다.

각 당 대선 후보들이 인구의 절반이 넘는다는 이유로 수도권만 쳐다보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이들의 에너지 정책 결정에 지방에 대한 고려가 얼마나 있었을까. 친원전은 물론이고 신재생에너지를 강조하는 후보들의 주장에도 지방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친원전을 주장하려면 원전 밀집의 위험과 사용후핵연료를 해결할 방법을 먼저 내놓아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은 내년 대선이 향후의 원전 정책을 좌우하는 사실상의 국민투표라는 것을 알고 있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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