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 신부 키운 건 ‘남부민동의 가난한 삶’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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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이태석/이충렬

은 선종 10주기 사업으로 진행된 ‘이태석 신부의 공식 전기’다. 이태석 신부가 몸담았던 한국살레시오회, 생전에 함께했던 수단어린이장학회의 지원을 받았고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출판 인가를 받은 전기다. 지난해 마무리해야 했는데 코로나19 탓에 1년 늦었다고 한다. ‘남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이태석 신부는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남부 수단 톤즈에 파견되어 봉사활동을 하며 체류했으며 대장암 투병 중 2010년 1월 48세로 눈을 감았다.

알로이시오 신부 보면서 ‘부르심’ 느껴
선종 10주기 기념 출간 ‘공식 전기’

이태석 신부를 처음 키운 것은 ‘부산 남부민동의 가난한 삶’이었다. 송도성당이 있었고, 평생을 이국땅에서 봉사한 알로이시오 신부를 보면서 첫 번째 ‘부르심’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가장 보잘것없는 형제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과 같다’는 성경 구절이 어린 그를 사로잡았다. 또 어릴 적 송도성당에서 풍금을 치면서 오후 5~6시의 늦은 햇살이 비스듬히 그의 얼굴을 비출 때 그는 그 햇살이 예수님의 눈길 같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그 빛 속에 또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도 떠올렸다고 한다.

두 번째로 그를 만든 것은 기도와 묵상이었다. 1999년 사제가 되기 전, 톤즈에 처음 갔을 때 이태석 신부는 충격을 받는다. 톤즈 상황은 너무나 참혹하고 처참했다. 한센병 환자들의 움막은 배설물로 뒤엉켜 악취로 진동했는데 역겹고 두려웠다. 의술이 아니라 소명의식과 영성, 기도와 수련, 묵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도와 묵상 속에서 그는 무한한 사랑의 하느님 모습을 품고 또 품었다. 사제가 되면서 자신의 상징 그림으로 택한 것이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이었다. 그의 삶으로 수긍한 신의 모습이었다.

이태석 신부의 마지막 모습은 인간적이었고 그런 만큼 숭고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영적 투쟁의 계곡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매일 새벽 성당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제대 뒤의 십자가 예수에게 이런 병을 주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이냐고 묻고 또 물었다. 항암 치료에 체력이 바닥나면서 후배 수사에게 “아프리카에서 열심히 일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 답답하다. 톤즈에 다시 갈 수 있을까”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불 속에서 통증으로 괴로워했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이 이어졌다.

인간의 육체로 넘어설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서히 고통마저 긍정하기 시작한다. 이태석 신부는 “한동안 잊고 지내던 톤즈의 친한 친구 하나가 갑자기 생각났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톤즈라고 자주 얘기하던 친구”라며 “바로 주님이시다”라고 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생명을 갉아내는 고통을 겪으며 그는 믿는다. “이제 더는 억울해하지 않겠다. 나에게 이런 큰 시련을 주신 하느님께서 분명히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믿는다. 진지하게 그 계획을 숙고하고 성찰해 겸손히 따르겠다.” 마지막 순간 그는 “모든 것이 다 좋다(Everything is good)”라는 말을 남기고 하늘로 떠났다. 이 책의 인세 전액은 수단어린이장학회에 기부한다. 이충렬 지음/김영사/264쪽/1만 68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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