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칼럼] ‘백신 불평등’과 오미크론 경고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위원

코로나19의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감염 사례가 국내서도 확인됐다. 나이지리아를 방문한 부부 등 5명이 지난 1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24일 세계보건기구(WHO)에 오미크론 변이가 처음 보고된 지 8일 만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과학자들이 지난달 9일 보츠와나에서 첫 표본을 채취해 새 변이의 존재를 확인한 거로 쳐도 한 달이 안 된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보고된 바이러스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하는데 3개월 남짓 걸렸던 점을 상기하면 놀랄 만한 전파 속도다.

코로나19 3개월 만에 전 세계 확산
오미크론 변이는 훨씬 빠르게 전파
첫 보고지 남아공 이미 우세종 돼

불평등 구조 바이러스보다 무서워
골고루 접종 못하면 변이 출몰 반복
백신 지재권 한시적이라도 풀어야


더욱이 오미크론은 나오자마자 ‘우려 변이(Variant of Concern)’로 지정됐다. 알파·베타·감마·델타에 이은 5번째 우려 변이다. 이 변이의 영향력은 뚜렷하게 파악되지 않았지만, 델타 변이보다 전염력이 높은 것은 확실하고 얼마나 더 저항력이 있는지가 문제라고 한다. 세계 각국도 발 빠르게 국경 봉쇄 조치 등을 취했지만 오미크론을 막기엔 역부족인 듯하다. 오미크론 변이가 처음 보고된 남아공에선 채 한 달이 안 되었는데 벌써 우세종이다. 2일 현재 오미크론 변이는 북미·남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전 대륙에 걸쳐 최소 29개국까지 확산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이번 오미크론 변이의 세계적 확산에서 새삼 주목하게 된 것은 백신 분배의 문제이다. 오미크론 변이의 탄생이 전 세계가 얼마나 백신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조명하게 했다. 현재로선 백신이 팬데믹 사태를 해결할 거의 유일한 희망이지만, 전 세계인이 빠르고 공평하게 백신 접종을 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전 세계가 골고루 백신 접종을 하지 못한다면 감염 확산의 추세는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고, 대유행은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감염이 계속 확산하면 바이러스 변이 가능성이 커져 기존 백신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가 구축한 국제 통계 사이트인 ‘아워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에 따르면 11월 30일 기준으로 아프리카 지역의 백신 완전 접종률은 7.33%이고, 한 차례라도 백신을 접종한 비율까지 합해도 11.09%에 그쳤다. 그나마 낫다는 남아공의 백신 접종 완료율도 24.11%로 집계됐다. 전 세계적으로는 54.5%가 1회 이상 백신을 접종했으며, 저소득 국가에서는 백신을 단 한 차례도 맞지 못한 인구가 6%로 나타났다. 다수의 선진국에서 인구의 60~80%가 접종을 완료하고, 추가접종(부스터샷)까지 맞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해결책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백신 공급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면 된다. 문제는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거다. 지난해 6월 코로나19 백신을 전 세계에 평등하게 공급하기 위해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감염병혁신연합(CEPI), WHO, 유니세프 등이 주도한 ‘코백스 퍼실리티(약칭 코백스)’가 출범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물량으로 목표치를 못 채웠다. 공급 물량이 한정된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 등이 백신 사재기에 열을 올리면서 저소득, 개도국에 돌아가는 백신 물량이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다.

국제적 백신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독점적 구조의 백신 구매 시장을 개조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글로벌 백신 형평성 제고를 위해 각국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남아공의 한 의학 전문가는 “우리가 충분한 규모의 사람들을 백신 접종할 때까지 변이 바이러스는 반복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전문가는 “‘백신을 가진 국가’와 ‘가지지 못한 국가’로 나뉘는 세계에서, 오미크론 변이는 백신 배분을 확산하기 위한 더 공격적인 조치가 없다면 어떻게 바이러스가 진화하고 퍼지는지를 알려 주는 경고”라고 지적했다.

물론 더 확실한 대안은 백신의 지식재산권 면제이다. 한시적으로라도 백신 특허를 풀어야 한다는 얘기가 다시 나오고 있다. 미국은 올 5월 지재권 면제 지지를 선언했으나 EU와 제약업계의 반대로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오히려 부스터샷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백신 쌓아 두기는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공교롭게도 지재권 면제를 핵심 의제로 지난달 30일 개최 예정이던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는 오미크론 확산으로 연기됐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불평등한 사회가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게 됐다. 지구 위 모든 생명은 상호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포함해서 말이다. 전 세계적 보건 위기를 마주한 지금, 국제 정책 공조와 연대 강화가 절실하다. 바이러스로부터 보호받는데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각국 정치 지도자들의 결단이 요구된다. “우리 모두가 안전해지기 전까지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지적을 되새겨야 할 때다. key66@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