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미혜의 젠더렌즈] 초저출생 시대 무자녀 여성을 위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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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법인 새길공동체 이사장

한 대선후보는 아이를 낳으면 5살까지 매달 100만 원의 양육비를 주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그만큼 저출생의 문제가 막다른 골목에 달했다는 의미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모성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의 하나로서 무엇보다 바람직한 역할로 생각되고 있다. 일단 결혼하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사회규범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은 아이를 갖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우며 아이를 가져야만 진정한 여성으로 거듭난다고 본다.

그러나 이미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출생률이 가장 낮은 국가 중의 하나이며 여성의 초산 연령도 2005년 29세, 2010년 30세, 2020년 32세로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여성의 재생산 경험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이와 같은 사회 변화와 함께, 아이를 출산하지 못하는 상태 또는 출산하지 않는 상태를 규정하는 용어도 ‘무자녀’나 ‘불임’ 같은 수동적인 입장에서 ‘비자녀’ 같이 능동적이고 선택에 중점을 두는 입장으로 변하고 있다.

무자녀 여성에 대한 관념 달라져야
모성 역할 강제는 부정적 영향 미쳐
전인적 발달 이끄는 활동 발판 필요

최근 통계 자료에 의하면 우리 사회에서 결혼 5년 차 기혼 여성의 무자녀 비율이 2009년 9%에서 2019년 20%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무자녀 여성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부정적인 부분만 강조함으로써 여성을 더욱 힘들게 한다는 점이다. 자녀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무자녀 여성은 타자로 소외되기 쉽다. 특히 불임에 의한 무자녀 여성은 임신을 위한 노력과 이에 따른 스트레스로 불행한 존재로 인식되며, 자발적 무자녀 여성은 이기적이거나 비여성적인 존재로 낙인을 받게 된다.

이렇듯 무자녀 여성은 사회로부터 부정적인 눈길을 받고 있지만 사실 그들의 결정은 단순히 개인적으로만 볼 수 없는 복잡한 배경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고 연속적인 특성을 보인다. 오히려 무자녀에 대한 결정은 이들 여성이 처한 개인적 상황과 사회적 환경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로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자발적으로 무자녀를 선택한 상태이지만 상황이 좋아지면 자녀를 갖는 경우도 있고, 불임의 상태가 지속되면서 다양한 노력은 했지만 결국 임신이 되지 않아 무자녀로 남는 경우도 있으며, 무자녀에 대한 분명한 결정은 없었지만 굳이 자녀를 가질 이유가 없어서 또는 나이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무자녀가 된 경우도 있다.

이는 무자녀에 대한 결정이 단순한 한 가지 요인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듯 기혼 여성의 무자녀 결정은 자유 추구나 다양한 기회 포착, 재정적 여유로움 등의 개인주의적인 동기가 전부는 아니다. 출산보다 일을 택한 여성도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감이나 주위 양육 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연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변화하는 개인의 가치관에 있다. 이제는 결혼생활에서 자녀가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아니며 결혼과 출산을 별개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인식은 직장생활을 수행하면서 비롯된 정체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거나 아니면 자녀에 대한 가치관 변화가 모성 정체성과 충돌하면서 빚어진 합리화 과정일 수도 있다. 즉, 자기 자식만을 사랑하고 자식에게 모든 것을 투자하는 것만이 바람직한 모성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도 부모와 그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을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관념은 다양한 가족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무자녀 여성을 애처롭게 보거나 아니면 이기적이라고 판단하는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탈피해야 한다. 여성과 모성을 같은 등식으로 생각하는 방식은 여성 모두에게 부담과 부정적인 효과를 제공한다. 앞으로 재생산 결정은 선택의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모성과 여성 간에 여유로운 간격이 만들어진다면, 다시 말해 여성이 강제적으로 모성의 역할을 할 필요가 없다면 여성은 보다 자유롭게 자신이 할 일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일은 일상적인 경제 활동 외에 지역사회 활동이나 취미 활동 등 보다 다양한 활동을 포함하게 된다. 이를 통해 여성은 돌봄 노동으로 연결되는 전통적인 정체성의 끈을 끊고 전인적인 발달을 도모하는 활동의 발판을 마련할 것이다. 문득 서구의 여성운동에서 주제가로 불리는 헬렌 레디의 ‘아이 엠 우먼’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나는 여자/ 나의 포효를 들어라/ 무시하기에는 우린 너무 커졌지/ 모르는 척 살기에는 너무 많은 걸 알게 됐어/ … 이제 지혜를 얻었네/ 지혜는 고통의 산물/ 큰 대가를 치렀지만 엄청난 것을 얻었네/ 나는 뭐든 할 수 있어/ 나는 강해/ 나는 꺾이지 않아/ 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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