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탐구 어떻게? 일상 잘 살피면 원래 길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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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종정 추대 성파 스님

13일 대한불교 조계종 새 종정으로 추대된(부산일보 12월 14일 자 1·15면 보도) 영축통림 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은 깨달음과 일상을 경계 짓지 않는다.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의 구분을 넘어섰고, 예술과 수행을 떼놓지 않는다.

스님은 지난해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진리를 어떻게 탐구해야 하나”라는 물음에 “그것을 따로 탐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변함없이 늘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일상을 잘 살펴 알게 되면 원래로 길이 있느니”라는 것이 스님의 법문이다. 나아가 스님은 내처 “진리를 일상생활에 별도로 접목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평소 이를 알아채느냐, 못 알아채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38년째 성파시조문학상 주도
예술인, 문화인 스님으로 명성
팔만대장경 ‘십육만 도자’ 구현
“말과 행의 일치로 소임 다할 것”

스님은 이판과 사판의 경계도 아랑곳 않는다. 진리를 탐구하는 ‘이판’과 절집 살림을 맡는 ‘사판’의 경계를 스님이 오간 계기는 1980년 신군부에 의한 10·27 법난이었다. 1960년 출가 이후 20년간 선방 수행을 하던 스님은 법난에 의해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선방을 나와야 했다. 총무원 직책과 통도사 주지 소임을 5년 이상 맡았다.

이런 경험을 통해 스님이 강조하는 것은 ‘이사무애(理事無碍)’다. 공부와 일상, 진리와 현상, 그 둘의 경계가 걸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수행자의 도리가 아니라 사람 살아가는 이치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론에만 밝아서도, 세상 사는 이치에만 밝아서도 안 되며, 서로 달라 보이는 둘을 훌쩍 넘나들어야 한다는 거다. 이치에 걸림이 없고, 하는 일에도 걸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게 삶의 궁극점이기도 하다.

스님에게는 예술과 수행도 다르지 않다. 그는 예술인 스님, 문화인 스님으로 통한다. 도자기, 민화, 글씨, 옻 공예 등 많은 분야를 넘나든다. 예술적 성취 또한 만만찮다는 평가를 받는다. 심지어 스스로 기금을 내서 38년째 성파시조문학상을 꾸릴 수 있도록 하는 예술 후원자 역할도 다하고 있다. 지역 문학계에서는 종교와 문학의 맞잡기라며 이를 ‘진경’이라고 평한다.

스님은 “수행이 따로 있고, 예술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지론을 편다. 나아가 예술이라는 것을 한다고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거다. 예를 들면 스님은 서예를 즐겨한다. 수양을 하는 데 서예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스님은 “글을 쓰면 몸과 붓이 하나가 되는 삼매에 들 때가 많다”고 말한다. 수행이니 예술이니 하는 구질구질한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냥 그것에 젖어든다는 것이다.

예술에 대한 관심은 역사를 필연적으로 소환하기도 한다. 한국 불심의 절정인 팔만대장경을 10년에 걸쳐 ‘십육만 도자 대장경’으로 구현했고, 7000년 전 선사시대 반구대 암각화를 옻칠 작업으로 다시 불러냈다. 스님의 관심과 작업, 지향은 상당히 넓고 깊은 것이다. 스님은 스스로 일도 많이 하면서 상좌들에게 일을 많이 시킨다. 누가 “상좌가 몇이나 되나”라고 묻자 “셀 필요가 있나, 상좌들은 모두 내 호주머니에 있으며 내 온기를 느낀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가꾼, 스님의 서운암 야생화 밭은 유명하다. 야생화 밭을 가꾼 것은 자연이 곧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아름다운 침묵이 부처님 말씀이라는 거다. 야생화 밭은 땀으로 일궈진 법문이다.

성파 스님은 종정으로 추대된 뒤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고불식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염두에 두고 말과 행(行)을 같이 하는 수행 정신으로 소임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말과 행의 일치’는 ‘진리와 일상의 일치’와 다르지 않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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