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시] 숲에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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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은 우

자꾸 이야기하다 보니 말이 생깁니다 기분이 달라지고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기분 탓인가요? 그러자고 한 건 아닌데 수다장이가 돼서 오물조물 오래 씹어 쉴 새 없이 꺼냈어요 이야기라면 해도 해도 할 게 많아요 귀를 여는 자가 없다면 저 무성한 나뭇잎들이 있잖아요 이리 와서 들어봐요 늘 같은 이야기지만 오늘은 하나 더 추가시킬 예정이에요 극적인 요소는 늘 있어요 마녀들이 밤에 모여 항아리에 대고 떠들던 주문 같은 것도 있다니까요 인생은 재미 아니겠어요? 문밖 무성한 화분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이야길 엿듣고 흉내 내느라 줄거리가 아니 줄기가 생겨서 풍성해졌어요 염치도 없이 나무 옆에 나무를 낳네요 자꾸만 나무들이 생기는 오후에 하나 더 있다고 하나 더 없다고 나무가 나무 아닌 것은 아니겠지요 비 오는 오후에도 어김없이 이야기에 중독된 여자들이 똑같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감수분열하듯 옆에서 옆으로 다음 손님을 부르네요



여자는 거미 다리 같은 손가락으로 사뿐사뿐 머리카락을 잘라요 몸이 생기기 전부터 손가락만 있었던 것처럼 손은 여자를 떠나 가위를 들고 허공에서 춤을 춰요 원피스에서 요란하게 싸우고 있던 꽃무늬들이 살짝 얼굴을 빼자 잎사귀들이 떨어져요 떨어져서 허공으로 떠다니는 꽃들. 차를 마시던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요 알지 못해요 가위질 소리에 맞춰 간간이 웃음소리를 끼워 넣을 뿐. 유리문이 밀릴 때마다 들어오세요 붙여진 팻말에서 글자들이 살짝 떨어졌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서죠 비밀과 상처는 오늘은 괜찮고 내일은 거대해지다 모레면 잊고 글피엔 주저앉게 만드니까요 쉽게 묻는 게 좋을까요 쉽게 말하는 게 좋을까요 수다장이들이 수다스럽게 찻잔을 부딪치며 그런 건 관심 없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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