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시 심사평]읽고 있어도, 읽고 나서도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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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명이 보내온 1903편의 작품에 깃들어 있는 무게감. 당선작을 결정하는 일은 그것을 이겨내는 일이었다. 마지막까지 심사자의 눈길을 끈 것은 ‘모두의 잠깐’ ‘뱉은 씨앗’ ‘숲에 살롱’ 세 편이었다.

‘모두의 잠깐’은 잘 쓴 시다. ‘우리는 중요한 일일수록/일의 틈틈마다 그 잠깐을 배치시켜 놓아요/하루가 연속성의 과정이라면/하루엔 얼마나 많은, 다양한 잠깐들이 있을까요’라는 진단은 휴식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마땅하고 옳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그 진단의 힘은 약해지고, 잠깐의 목록들을 호출, 나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뱉은 씨앗’은 ‘오물거리는 입속에서 톡톡 내뱉어지는/수박씨들, 저것은 아마도 최초의 농법’이자 ‘직파법’이라는 발상이 뛰어났다. 그러나 이 발상이 인간에게로 향하는 심화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시를 닫아버린 것이 못내 아쉬웠다.

‘숲에 살롱’은 재미있다. 읽고 있어도, 읽고 나서도,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어느 동네나 있을 법한 살롱(미장원)과 어느 동네나 떠돌만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요리조리 이야기의 잎사귀들, 시의 잎사귀들을 갖다 붙였다.

시가 독자를 억압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대면이 어려운 이 시대에, 이런 재미난 이야기의 광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겁다.

첨언 한 가지. 이 시가 만약 잎사귀가 아니고 꽃을 이야기했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아무쪼록 좋은 시는 꽃이 아니라 잎사귀를 보기 좋게 매다는 일이다.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전동균·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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