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모든 길은 부울경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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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해가 가기 전에 해 놓은 게 하나라도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여기는 이즈음이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시간에 쫓겨 올해 마지막 휴가까지 들여 길을 줄여 왔던 터였다. 그 길은 다름 아닌 갈맷길이다. 오래전부터 부산의 전역을 걸어왔다고 자부하지만 갈맷길 지도를 들고 혹시 빠진 구간은 없나 살피던 차에 그동안 놓쳤던 길만 골라 연내에 마무리한 셈이다. 기장 임랑에서 강서 가덕도, 금정 고당봉에서 사하 몰운대까지 부산의 속살을 만나는 행복한 길이었다.

먹잇감이 풍성한 낙원을 찾아 끊임없이 길을 나서던 유목민의 습성이 유전자에 각인된 까닭인지 길은 늘 저 스스로 확장되기에 십상이다. 부산의 동서남북 끝에서 걸음을 재촉하다 보면 길은 울산과 경남으로 나 있게 마련이다. 부산을 걸었으니 내처 울산과 경남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문제는 부산과 울산, 부산과 경남 사이에 가로놓인 경계, 그러니까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어떻게 뛰어넘을까이다.

갈맷길 완주, 올해 보람 중 하나
부산 걸었으니 이젠 울산·경남으로
부울경 거리감 없애는 게 관건

내년 2월 출범 앞둔 메가시티
촘촘한 광역교통망이 성공 좌우
긴 호흡으로 성과 쌓아 나가야


그런 점에서 해가 가기 전에 또 하나 다행스러운 일은 부산과 울산을 잇는 동해선 2단계 구간(부산 일광~울산 태화강역)이 오는 28일 개통한다는 사실이다. 부산의 좌천·월내역을 지나면 울산의 서생·남창·망양·덕하·개운포·태화강역으로 전철은 달린다. 부산을 달리던 전철이 울산 곳곳으로 이어 달리는 셈이니 부산과 울산이 한동네가 된 것이나 진배없다. 전철이 부산과 울산 사이의 경계를 가뿐히 통과하면 울산에 내려 걸을 만한 곳은 없을까, 마음도 덩달아 내달릴 것이다.

경남으로 가는 길은 사정이 어떨까. 부산에서 양산과 김해로 가는 길은 별문제 없다. 양산은 부산의 도시철도 2호선, 김해는 부산김해경전철을 타고 갈 수 있다. 아쉬운 것은 내년 3월 개통을 예고했던 부산과 경남 간 광역전철망인 부산 부전~경남 창원마산역 복선전철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낙동강 하저터널 지반 침하로 공기가 지연되고 있어서다. 부전역을 떠나 사상역~김해공항~가락IC~장유~신월~창원역~창원마산역으로 가는 철길은 내년 말 이후에나 개통될 전망이다.

부산·울산·경남을 잇는 광역교통망은 부울경의 상생을 떠받치는 삼발이 하부구조다. 교통망이 구축되면 울산 태화강역에서 부산 부전역까지 76분, 부전역에서 경남 창원마산역까지 38분이 예상된다고 한다. 2시간 이내에 부울경을 다닐 수 있다는 말이다. 출퇴근도 가능한 시간이어서 부울경이 사실상 공동 생활권에 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로마와 관련한 두 개의 익숙한 속담은 내년 2월 출범을 앞둔 부울경 메가시티가 좌우에 턱 하니 놓고 두고두고 새길 만한 교훈이라 하겠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그것이다. 전자는 공간과의 소통, 후자는 시간과의 소통에 방점을 찍었다. 부산·울산·경남의 거리감을 없애는 노력과 더불어 작은 성과와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 긴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을 웅변한다.

거리감을 없애는 데는 사통팔달의 교통망 구축만 한 것이 없다. 부울경 메가시티의 성공으로 ‘모든 길은 부울경으로 통한다’는 말이 회자한다면 더 바랄 바 없지만 이에 앞서 ‘모든 길이 부울경에서는 통한다’가 성사돼야 할 것이다. 광역철도든 광역버스든 부울경을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잇는 교통망이 우선 요구된다. 환승제도 부울경 전역으로 확대돼야 마땅하다. 수도권에서는 이미 시행 중인 터라 우물쭈물할 시간도 없다.

거리감이 사라진 광역교통망이라야 부울경 상생의 진정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사람과 물자가 광역교통망의 플랫폼을 통해 막힘없이 지속하여 흐르고 또 흘러야 한다. 이미 부산·울산·경남이 부울경 특별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하기로 합의를 본 7대 사무인 산업·경제, 교통·물류, 문화·관광, 재난·환경, 교육, 보건·복지, 먹거리도 광역교통망이라는 길 위에서만 가능하다.

‘무엇인가를 얻을 때는 반드시 무엇인가를 잃게 된다’고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게 선현들의 지혜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해외로 가는 발길은 묶였지만 스스로와 터 잡고 살아가는 지역을 돌아보는 기회는 더 많이 얻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방소멸 위기에 한데 내몰린 부산·울산·경남이 상생과 협치를 통해 활로를 찾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시기가 지금인지도 모른다.

부산에서, 울산에서, 경남에서 저마다 부울경 메가시티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할 때다. 부산·울산·경남을 천천히 걷다 보면 부울경을 사랑하게 되고, 부울경 메가시티가 도약할 길도 드러날 것이다. 사람이 오가는 동남권 광역관광, 물자가 오가는 도시와 농촌의 먹거리 공동체도 그 길 위에서 만날 수 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으니, 이제 내딛는 걸음걸음만 남았을 뿐이다.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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