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송구영신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겨울의 절정에서 때 아닌 글귀를 떠올렸다. 올해가 불과 나흘밖에 남지 않았는데, 하도 연말 같지 않아서다. 연말에는 일 년을 보내는 아쉬움과 함께 새해에 대한 기대로 설레고 들뜨기 마련이다. 역시나 과거 ‘밀물썰물’에도 12월에는 ‘송년회’ ‘망년회’ ‘세밑’ 같은 주제가 자주 등장했다. ‘폭탄주’나 ‘충성주’ 등 지나친 음주문화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글도 눈에 띄어 당시 시대상을 짐작케 한다.

내년 1월 2일까지 ‘위드 코로나’가 멈추면서 연말 분위기는 꽁꽁 얼어붙었다. 사적 모임 인원 제한을 4인으로 줄이고, 식당·카페 등 영업시간을 오후 9시까지로 제한한 탓이다. 연말 특수를 기대하던 식당, 노래방, 숙박업, 스키장, 파티룸 등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라고 한다. 부산을 비롯한 전국에서 준비하던 신년 카운트다운부터 해맞이 축제까지 대부분의 연말연시 축제는 취소됐다. 방송국의 연말 시상식도 거의 무관중으로 진행되고 있다. 오랜만에 해외여행이나 여럿이 모이는 송년회를 계획했다면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그 덕분에 연말을 어떻게 보내느냐고 물으면 “가족과 함께”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애들한테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은데 분위기 좋은 트리 장식 있는 곳을 알려 달라”와 같은 글이 잇따라 올라온다고 한다. 코로나 감염 걱정을 덜려면 철저한 방역과 함께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야외 공간이 좋을 것이다. 지난 23일부터 개방한 부산항 북항 친수공원이 이 조건에 적합해 보인다. 크리스마스트리와 이글루존이 설치되어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난다. 플리마켓과 함께 버스킹 공연도 열려 점차 발길이 늘고 있다. 중구 대청동과 영주동 산복도로 1.2km 구간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산복하늘 빛의 거리’ 축제도 조용한 가운데 부산의 숨은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성경에는 예수가 12월 25일에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어디에도 없다. 원래 12월 25일은 고대 로마 시대 태양신의 축일이었다. AD 350년 당시 로마 주교 율리오 1세가 그때까지 로마 사람들의 축제일인 이 날을 예수 탄생일로 선포하면서 크리스마스로 이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크리스마스가 원래 빛의 축제였다는 사실은 일 년에 해가 제일 짧고 어둠이 제일 긴 동지와 일맥상통한다. 동지와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춥고 어둡지만 세상의 기운은 이미 바뀌고 있다. 송구영신(送舊迎新)! 무얼 보내고 무얼 맞이할지 차분하게 고민하기 좋은 때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