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비호감 후보보다 더 최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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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팀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사고방식은 남다른 데가 있다. 그는 지난 22일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이재명, 윤석열 다 마음에 안 든다. 진심으로 뽑을 사람이 없다’는 시청자 질문에 “선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쁜 선택”이라며 “그래도 덜 나쁜 후보를 선택하는 게 낫다”는 답을 내놨다. 맞는 말인데, 당사자가 거론하긴 참 민망한 말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 후보는 ‘그래도 덜 나쁜 나를 뽑으라’고 꿋꿋하게 얘기한다. 당 경선 때는 자신의 도덕성이 쟁점이 되자 “한 톨의 먼지도 없이 살았다”고 받아쳤다. 웬만한 성인군자도 하기 힘든 말이다. 이 후보의 이런 ‘멘탈’을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긴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한 점 부끄러움 없다”는 이 후보의 자신감에도 ‘역대급 비호감 선거’는 이번 대선을 상징하는 키워드로 굳어졌다. 차선은 언감생심, 이 후보 말처럼 차악이라도 골라야 할 텐데, 문제는 진영 선거에 매몰된 거대 양당이 누가 덜 나쁜지 검증 기회조차 막고 있다는 것이다.

차선도 아닌 차악 뽑는 비호감 대선 불구
진영 선거에 도덕성·자질 검증도 무력화
각 후보 시민 좌절감 엄중히 받아들여야

대장동 의혹은 핵심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압수수색 직전 이 후보의 최측근과 통화한 뒤 휴대폰 증거 인멸을 시도할 때부터 ‘쎄한’ 느낌이었는데, 윗선과의 연결고리로 거론되던 실무자 두 사람은 최근 연달아 목숨을 끊었다. 의구심이 눈덩이처럼 커지지만, 대장동 사업을 직접 설계했다던 이 후보는 요즘 대장동만 나오면 유독 기억이 잘 안 나는 묘한 증상을 토로하고 있다. 여당 대선후보가 연관된 의혹 사건이 한 편의 정치 스릴러 영화처럼 흘러가는데, 선거 전 실체적 진실 규명은 이미 물 건너 간 느낌이다. 국민 60%가 특검 도입을 일관되게 찬성하고 있지만 양당의 특검 논의는 한 달 이상 ‘핑퐁’ 중이다. “윤 후보도 같이 해야 한다”는 이 후보와 “같이 하자고 한 지가 언제냐”는 윤 후보 중 누가 특검를 꺼리고 있는지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대장동 의혹이 들끓던 10월 “이번 대선은 가치보다 이익 투표”라며 대장동의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던 민주당 윤건영 의원의 호언장담이 현실이 돼 가는 듯해 씁쓸하다. 국가 지도자의 선택 기준에서 가치보다 이익이 우선하고, 기본적인 검증조차 무의미해진 시대에서 선거는 과연 무엇을 위한 과정인가? 이런저런 유불리 계산을 제쳐두고 이 후보가 대장동의 ‘빌런’ 같은 이미지를 벗지 못한 채 집권하는 건 이 후보 스스로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모든 권위는 궁극적으로 도덕적 권위라는 말이 있듯 도덕적 기반이 부실한 지도자, 국가 권력은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위태롭다.

윤 후보 역시 장모, 부인의 의혹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서 자신의 대표 브랜드인 공정이 ‘선택적’이라는 의구심을 짙게 남겼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 정권 핵심이든 누구든 범죄 혐의가 있으면 좌고우면 하지 않고 수사한다는 검사로서의 원칙론이 정치 초년생 윤석열을 제1야당 후보로까지 밀어올린 최대 기반이다. 그런데 윤 후보의 공정의 칼은 가족 문제에서 심하게 굽은 듯하다. 캠프에서 배우자 김건희 씨의 허위 경력을 두고 “하나는 범죄의 영역이고, 하나는 커리어를 과장한 문제”라고 조국 전 장관 측의 입시 비리 문제와 차별화 하려는 것도 온당치 않다. 더 좋은 기회의 사다리에 오르기 위해 남들이 쉽게 하지 않는 편법, 때론 불법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고려대 입학에 쓰면 더 문제고, 시간 강사 채용 때 쓰면 덜 문제라는 주장은 윤 후보가 그렇게 비판하는 ‘내로남불’에 불과하다.

도덕성 의혹도 의혹이지만, 정책 검증도 무망해 보이긴 마찬가지다. 이 후보의 대표 공약인 기본소득, 국토보유세는 하루 아침에 후순위로 밀렸고, 부동산 정책은 몇 달 전과 180도 바뀌었다.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는 발언 이후 ‘공약이라고 했더니 다 지키는 줄 알더라’ 류의 패러디가 쏟아진 건 말의 무게를 스스로 추락시킨 이 후보의 자업자득이다.

‘본(인)·부(인)·장(모)’ 의혹과 ‘핵관(핵심 관계자)’의 늪에 빠져 제자리걸음만 하는 듯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사정은 더 참담하다. 이성보다 감성에 어필한 배우자 김건희 씨의 사과 기자회견이 허위 경력 문제를 잠재울지도 미지수다. 무엇보다 입을 열 때마다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윤 후보가 과연 대권 수업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 공약은 충분히 소화해서 내놓는 것인지 기본적 자질에 대한 우려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커지고 있다.

끝 모를 코로나 팬데믹에 천정부지로 치솟은 주거비, 1년 내내 마음 편한 일 없던 2021년의 끝까지 힘겹게 버텨온 시민들이지만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은 아득하기만 하다. 두 후보는 특검이든, 토론회든, 공약이든, 시민들의 이런 절망적인 심정을 겸손하고,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뭘 선택해도 오답 같은 대선 시험지를 두고 좌절하고 있는 시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고 염치다.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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