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939 >아버지를 우연히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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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사실, 우리나라 언론의 한자어 실력은 형편없다. 얼마 전 ‘무운(武運)을 빈다’를 ‘운이 없기를 빈다’라고 해석한 방송기자도 있었는데, 이게 딱히 평균 이하는 아닐 수도 있는 것. 증거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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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기사 제목들이 이런 식이다. 이게 얼마나 엉터리인가는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사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우(遭遇): ①신하가 뜻에 맞는 임금을 만남. ②우연히 서로 만남. =조봉.(그는 적들과의 조우를 피하여 적진을 멀리 돌아갔다.)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썼을 텐데, 보다시피 그냥 ‘만남’이 아니라 ‘우연히 만남’이라야 조우인 것. 한데, 일정에 따라 대선 후보들이 포럼에서 만난 걸 두고 조우라 했으니 말이 안 되는 것.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이 함께 영화 찍은 걸 두고 조우라고 하는 건 더욱 가관이다.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차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정상 단체 사진 촬영 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조우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고 한 기사며 저 제목은 또 뭔가. 이는 모두 기자들이 말뜻을 제대로 몰라 빚어낸 잘못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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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제목들 역시 우리 언론의 한자말 실력을 그대로 보여 준다. 표준사전을 보자.

*해후(邂逅):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뜻밖에 다시 만남.(감격적인 해후./극적인 해후./이 이십 년 만의 해후를 기뻐하기는 이들의 심정은 사실 착잡했다.)

여기서 보듯이 오랜만에 만났다고 모두 해후가 아니라, 그러면서도 ‘뜻밖에’ 만나야 하는 것. 말뜻을 알고 나면 미국에서 돌아온 류현진이 부모를 만나는 걸 ‘해후’라 한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알게 된다.(‘세찬 기세로 갑자기 뛰어듦’이란 뜻인 ‘돌입’도 어울리지 않는다.) 11년 전 사별한 남편과 사후에 만나는 걸 두고 ‘해후’라고 한 것 역시 낯이 뜨거워지는 표현이다.



이런 제목에 나온 ‘풍지박산’은 아예 잘못 쓴 한자어. 표준사전을 보자.

*풍비박산(風飛雹散): 사방으로 날아 흩어짐.

이러니 ‘풍지박살’이라 쓰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할 판이랄까.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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