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료 균등’ 망각하고 ‘양지’만 좇는 부산백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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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부산백병원이 43년간의 ‘개금동 시대’를 접고 아예 동부산 쪽으로 옮겨 갈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백병원 재단 측이 해운대백병원 인근의 사유지를 사들이기 위한 매입 의사를 부산시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부산백병원의 의료 시설과 의료진을 옮겨 해운대백병원과 기능을 합치고 부산백병원은 요양병원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시설 노후화와 고질적 주차난 때문에 시설 확충 혹은 위치 이전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병원 측 논리다. 한계에 달한 시설을 확장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인근 주민 여론을 무시하고 이렇듯 무리한 이전을 강행하는 것은 공적 역할을 담당하는 종합병원으로서 납득하기 힘든 행태다. 특히 ‘지역 균등 의료 제공’이라는 소임을 다하겠다는 설립 당시의 취지와도 어긋난다는 점에서 더욱 유감스럽다.

해운대 이전 땐 의료 공백 불 보듯
의료 공공성 설립 취지 팽개쳐서야

1979년 부산진구 개금동에서 개원한 부산백병원은 상대적으로 병원이 적은 공단 지구의 의료 취약 지역에 위치하는 조건으로 정부로부터 시설비 75억 원 등 자금을 지원받고 의과대학 설립 인가 혜택까지 얻은 역사가 있다. 현재까지도 전국 백병원 중에서 환자가 가장 많아 부산 지역 3개 상급종합병원 중 하나로서 중추인 역할을 담당한다. 하루 평균 외래환자 3600여 명과 입원 환자 800여 명, 환자 보호자 및 의료진, 행정직원, 재학생 등 1만여 명이 상주하는 대형 의료기관이다. 부산백병원이 이전할 경우 이 일대의 의료 공백과 상권 붕괴는 불 보듯 뻔하다는 얘기다.

이 병원이 산복도로에 자리 잡아 시설과 주차장을 확장할 부지가 턱없이 부족하고 교통체증마저 심각한 상황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9월 병원 옆 초등학교 부지를 매입하기 위해 엉뚱하게 폐교 운동을 벌인 저간의 사정도 시설 확충에 대한 조급함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교육당국도 아닌 민간 병원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학교 통폐합은 학부모를 비롯한 지역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병원 관계자의 가족과 친척까지 동원하는 모습이 드러나 논란을 빚은 바 있다.

하지만 백병원이 선택한 출구가 ‘해운대 이전’이라는 사실은 놀랍다 못해 충격적이다. 기존 시설을 요양병원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이 지역에서의 종합병원 기능을 접겠는다는 의미다. 부산진구와 사상구, 북구 일대의 의료 수요에 대해 당초 설립 취지와 달리 의료 기관으로서의 공적인 책임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코로나19 사태 앞에서 의료 공백 우려를 키우는 것은 물론 부산 안에서의 ‘동서 격차’에 의료 시설마저 가세할 일인지 묻고 싶다. 그동안 지역을 토대로 성장하면서 챙길 과실은 다 챙기고 이제 눈앞의 이익만 좇는 것이냐는 따끔한 쓴소리도 들린다. 증축이든 이전이든 보다 진지한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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