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공간은 부산의 장점 창업 인프라 수도권보다 열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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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신년기획-PK로 돌아온 청년들, 나를 말하다] 유지형 건축사

건축 설계는 고된 일이다. 밤 새워 도면과 씨름하며 며칠간 집에도 못 가는 일은 예사다. 업무 강도가 높다 보니 여성 건축사는 흔치 않다. 부산 지역 건축사 1051명 중 여성은 93명에 불과하다.

나는 부산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나온 ‘부산 토박이’다. 대학 졸업 이후 부산의 한 건축사 사무소에서 5년간 일하다 ‘큰물’에서 일해 보고 싶어 2007년 서울로 이직했다. 직원이 1000명이 넘는 건축사 사무소의 '대기업'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서울 직장 생활은 지역보다 나은 처우와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 설계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좋았다. 하지만 회사 규모가 큰 만큼 업무가 세분화돼 있어서 한 번 파트가 정해지면 맡은 부분만 반복하는 ‘회사의 부품’처럼 느껴지는 단점도 있었다. 특히 남편과 맞벌이를 하는 상황에서 아이가 생기며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결국 서울 생활 5년 만에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부산과 서울에서 해 본 직장 생활은 각각 장단점이 있었다. 다방면으로 업무를 배우고 주도적으로 실무를 할 기회는 부산이 더 많다. 서울에서 근무한 5년 동안 부산에서 배운 실무 지식이 큰 힘이 됐다. 서울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을 접하며 건축에 대한 시각을 확장할 수 있고, 건축업계 인맥도 두루 넓힐 수 있다. 그러다 문득 부산과 서울 직장 생활의 장점을 서로 결합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38살이던 2018년 DOT건축사 사무소를 서동수 대표와 함께 창업했다. 서 대표는 같은 부산 출신으로 서울에서 근무하다 비슷한 시기에 다시 부산으로 왔다. 나는 서 대표와 ‘동병상련’의 처지로 의기투합했다. 회사는 다행히 조금씩 지역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직원 3명으로 시작한 회사가 이제는 8명이 됐다.

부산은 분명 공간적으로 매력적인 도시다. 바다와 산, 산복도로 등 다양한 공간은 지형을 다루는 건축사에게는 엄청난 환경적인 장점이다. 하지만 지역에서 회사를 이끄는 입장에서 어려운 점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인재를 구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건축설계 업계에서도 양질의 인력들이 상대적으로 업무 여건이 더 나은 수도권에 대부분 몰려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많다. 현재는 주로 공동주택 설계를 맡고 있지만, 여건이 되면 디자인 공모전에도 참여하고 싶다. 자신의 생각과 디자인이 투영된 건축물을 남긴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부산의 매력을 듬뿍 담은 상징적인 건축물, 차별화된 부산만의 콘텐츠가 녹아든 건축물을 부산에 짓는 것이 꿈이다. 김성현 기자 kksh@ 사진=강선배 기자 k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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