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리셋 기회와 희망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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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학평론가

한 해가 가면 다음 해가 온다. 흥미로운 점은 그렇게 맞이한 날이 사실 특별한 날은 아니라는 점이다. 달력의 변천 과정을 보면, 이러한 사실은 피부에 더욱 와닿는다. 우리가 쓰는 달력은 로마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최초 로마 달력은 304일이 1년이고 1년이 10달이었다. 이후 율리우스력이 시행되면서 1월과 2월이 추가되어 12달이 되었고, 일 년의 시작이 3월이 아니라 1월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니 기원전 450년 무렵 일 년의 시작이 지금의 1월이 되고, 열두 달이 흘러 12월이 되면서 한 해가 마감되는 지금의 달력이 정착된 셈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한 해의 끝을 12월로, 다음 한 해의 시작을 1월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한 해의 시작은 지난해 기억을
리셋할 수 있는 시간의 해방구

실수 반복하고 결심 흐트러져도
다시 온 새해엔 새로운 결심을
모두 복 많이 받는 한 해 되시길

이러한 역법(曆法)을 보면, 의문이 드는 것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가령 한 해의 시작을 6월을 1월로 삼지 않은 이유 같은 것 말이다. 꽃피고 찬란한 계절의 극치인 5월이 한 해의 마무리가 될 수 있었다면, 한 해가 가고 다음 한 해가 오는 세월의 흐름이 덜 황망하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물론 겨울을 사랑하고 12월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피부 끝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과 꼿꼿하게 다가오는 쌀쌀함이 정신을 일깨우면서 예민하게 한 해를 정리하도록 하는 즐거움을 모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은 12월의 마지막 날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는 상황에 대해 그다지 불만이 없어 보이며, 그래서 더욱 1월 1일을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인상을 지울 길이 없다.

하지만 이어지는 의문 역시 피할 수 없다. 지금의 1월이 한 해의 시작인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할지라도, 왜 우리는 이렇게 우연하고 무작위적으로 생겨난 1월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관찰에 따르면, 특별한 날은 일상의 날들과 대비되어 삶의 의미를 일깨우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시간 속의 존재일 수도 있는 인간의 한 측면을 통해, 일상의 존재인 인간의 다른 측면까지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배운다고나 할까. 현실적인 언어로 그 이유를 부연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리셋’이 가능한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은 앞으로 흐르기에 우리는 그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오를 수 없는 존재로 믿어진다. 그 믿음에 따르면 인간은 과거로 갈 수 없고 지나간 일을 돌이킬 수 없다. 그토록 많은 영화에서 과거를 여행하거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시간을 거스르는 설정이 나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절대로 인간을 그럴 수 없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과거로 갈 수 없는 자가, 그나마 도전할 수 있는 곳이 미래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에게는 과거처럼 미래를 만들지 않는 길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한 해의 시작은 지난해 혹은 그 지난 모든 해의 기억을 ‘리셋’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시간의 해방구 역할을 할 수 있다. 작심삼일일지라도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통해 지난 시간의 아쉬움을 달래거나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시도할 수 있게 된다. 비록 그 계획이 틀어져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그 결심이 흩어져 다시 예전과 같은 자신으로 돌아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할지라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도 새로운 리셋의 시간을 애타게 찾아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된다.

가깝게는 코로나 멀게는 생태의 위기 속에서, 인간은 과거의 잘못과 실수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올해도 또 무언가를 기획하고 다시 결심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리고 그 결과나 성패와 무관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인간다운 일이고 희망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다시, 찾아온 새해, 모두 복 많이 받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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