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가난하게 오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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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회갑연은 집안의 큰 행사이자 동네잔치였다. 우리나라 나이로 61세가 되는 생일을 이렇게 화려하게 기념했다는 건 그 나이까지 살았다는 것이 감사이자 축하를 받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 요즘 환갑잔치를 하는 이는 거의 없다. 환갑은 노인에 끼지도 못할 정도로 아직 젊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의 고령화 비율은 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불린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024년에 1000만 명을 넘어서며 2035년에는 인구 10명 중 3명은 65세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통계를 보자. 영국의 한 연구팀이 선진 35개국의 2030년까지 기대 수명을 예측한 자료가 있다. 2030년이면 한국 여성과 남성 평균 수명이 모두 전 세계 1위이며 특히 한국 여성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평균 수명이 90세를 넘게 된다고 발표했다. 2030년 한국은 압도적인 1위로 세계 최고 장수국가에 등극하게 될 전망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지난해 기준만 봐도 한국은 이미 평균 수명 83.5세로 전 세계 1위인 일본(84.7세)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OECD 국가 중에서도 단연 1위이다. 독일보다 4배 정도 빠른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한국이 세계 최장수국가로 등극할 만큼 평균 수명이 늘어났지만, 동시에 2018년 기준으로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평균보다 3배 높으며 독일의 4배, 프랑스의 10배일 정도로 한국 노인들은 가난하다. 이 수치들을 종합하면, 한국 노인은 가난한 상태에서 오래 살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한국의 급속한 고령화를 지적하는 기사에는 비관적인 댓글이 이어진다. ‘한국의 뛰어난 의료기술이 준 지옥이다’ ‘가난하기를 해결할 수 없으니 오래 살기를 포기하는 안락사를 인정해라’ ‘세계 최저출산율과 세계 최고고령화의 환장하는 조합이 완성되었다’ 등이다.

한편으로 대한민국은 노인자살율도 OECD 국가 중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가난하게 오래 살아야 하는 한국 노인의 삶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준비되지 않은 장수’는 저주라는 말이 있다. 이제 국가도 개인도 노후에 대한 준비를 좀 더 일찍 광범위하게 구체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장수가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

김효정 라이프부장 ter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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