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QR코드 찍고 싶은데”… 방역패스 ‘장애인 패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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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2시께 부산 동구의 한 음식점을 찾은 한지혜 부산시각장애인주간보호센터장은 방역패스 인증에 한참 애를 먹었다. 스마트폰의 글자 크기를 최대로 키웠지만 모바일 앱의 작은 아이콘 탓에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코로나19 전자예방접종증명서인 ‘쿠브(COOV) 앱’에는 장애인을 위한 음성설명 기능이 있지만 주변이 시끄러우면 무용지물이고, 일부만 작동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어려웠다.

비장애인에 맞춰진 방역시스템
QR 스캔 시각장애인엔 ‘장벽’
‘쿠브 앱’도 음성 안내 불완전
타인에 폰 맡겨 정보 노출 우려
휠체어 장애인 체온측정 불편
눈치 보며 아예 외출 포기까지
“접근성 보장 강제수단 필요”

QR코드 스캔을 활용한 방역패스가 일상으로 자리 잡았지만, 비장애인 기준으로 설계된 탓에 장애인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식당 문턱에서부터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장애인들은 ‘QR코드’라는 장벽에 막혀 외출을 포기하는 실정이다.

실제 취재진이 이날 함께 확인한 결과 쿠브 앱을 켤 때 ‘비밀번호를 누르라’는 음성안내가 나오지 않아 시각장애인들은 앱이 정상적으로 열렸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QR코드 제한시간(15초)이 초과했는지 여부도 음성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약시 장애를 가진 한 센터장은 “쿠브 앱 실행의 모든 과정에서 큰 제약을 겪고 있다”며 “QR코드를 스캐너에 정확히 갖다 대는 일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특히 시각장애인들은 쿠브 앱 사용은 물론 개인 정보 노출 우려에도 직면해 있다. 장애 정도가 중증일수록 방역패스를 통과하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수적이어서, 점원 등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인 문화복지공감 이경혜 대표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내 민감한 정보와 사생활이 담긴 스마트폰을 누군가에게 맡겨야만 시설에 출입하고 일상 생활이 가능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도 불편을 겪긴 마찬가지다. QR코드와 체온측정기, 손소독제 등이 모두 비장애인 눈높이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사상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노경수 소장은 “모든 방역시스템을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한 뒤, 장애인에게 일괄적으로 같은 기준을 강요하는 현실 때문에 비롯된 문제”라고 말했다.

모바일 앱을 제작할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동등하게 고려하라는 정부 지침도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정부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콘텐츠 접근성 지침 2.0’은 강제가 아닌 권장 수준이어서, 국가가 제공·배포한 인증 수단인 쿠브 앱조차 이 지침을 따르지 않는다.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김병수 소장은 “쿠브 앱은 정부가 장애인 등 정보격차 계층의 접근성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태에서 방역 대책을 설계한 대표적인 증거”라며 “기존의 전화를 이용한 콜 인증 방식을 개선하는 등 방역패스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모바일 앱 개발 시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하는 강제 수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충북대학교 SW중심대학사업단 문현주 초빙교수는 “장애인의 모바일 앱 접근성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평가와 규제 조항을 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준영·김동우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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