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사과 잘하는 후보 뽑는 대선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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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녕 편집국 부국장

역대 경험해 본 어떤 선거에서도 이처럼 거꾸로 가는 선거를 본 적이 없다.

‘누가 국민을 위해 일을 더 잘 할까’를 따져봐야 할 선거의 본 의미는 사라진 지 오래다. 자신의 장점보다 상대의 결점을 드러내는데 주력하는 소위 ‘네거티브’ 선거전을 비판하는 일은 이제 소용없다. 워낙 결점이 많고 '쓸데 없는 소리'도 많이 하는 후보들이다 보니 ‘네거티브’는 이미 우리 선거의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검증해야 할 대통령 선거가 ‘네거티브’로 드러난 후보의 결점을 어떻게 잘 주워담느냐를 평가하는 자리가 돼버렸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가 ‘누가 국민에게 사과를 더 잘 하는가’에 따라 그 승패가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흠결·실언 많은 후보 간 경쟁
검증과 비전 제시는 뒷전
사과 잘해야 지지율 상승

누가 당선돼도 국민 불안
대통령제 제도적 보완 절실
대안마련 공약 걸고 지켜야


대장동 의혹과 관련 사과보다 부인으로 일관하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은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치명타가 될 것 같던 아들의 도박 문제가 불거진 후 이 후보는 바로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수차례 사과를 했다. 공교롭게도 이 때부터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앞서 살인을 한 조카에 대한 변호 문제는 언론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민이 인지하기도 전 선제적으로 사과에 나섰다. 이 후보에게 악재가 분명했지만 대선이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조카의 살인 변호 문제가 선거 쟁점에서 사실상 사라졌다는 점에서 선제적인 사과가 큰 효과를 본 셈이다.

반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아내 김건희 씨의 허위 경력 논란과 관련 언론 앞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한채 해명에 나섰다가 그날로 지지율이 내리막길을 탔다. 앞서 윤 후보는 ‘전두환 씨가 정치는 잘했다’는 식의 발언을 한 후 어정쩡하게 사과를 하면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사과 당일 개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SNS에서 게재했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논문표절 의혹과 관련한 두 후보의 사과 자세는 더욱 극명하게 대조를 이뤘다. 윤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의 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한 모 대학의 검증 결과가 올 5월이나 돼야 나온다는 보도가 지난 주말 각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김 씨의 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한 논란은 대선 내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이 후보는 자신의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진작부터 “표절을 했다. 잘못했다. 대학에 취소를 해달라고 했는데 안 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 후보의 이렇듯 ‘과감한’ 논문 표절 인정 덕분인지 세간에 이 후보의 논문표절을 거론하는 말들은 찾기가 힘들다.

표절이 잘못된 건지 사과를 제대로 안한게 잘못된 건지 분간이 안되는 선거가 돼 버렸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흠결과 실언들을 얼마나 잘 포장해서 국민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느냐 하는 경쟁장이 돼 버린 것이다.

두 후보가 대통령이 돼서 꾸려가겠다는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도무지 알 수 없다. 한 사람의 공약은 너무 자주 바뀌고, 한 사람의 공약은 아직 정리가 안된 것 같다.

올해 처음 대통령 선거를 하게 되는 딸과 아들에게 괜히 부끄러워진다. “누구를 찍어야 하나요?”라는 딸과 아들의 질문이 ‘아버지의 뜻에 따르겠다’는 의미는 분명히 아닐 것이다. 20대 초반의 자녀 눈에 비친 작금의 현실을 감안하면 ‘대통령 선거가 원래 이런 건가요?’ 혹은 ‘대통령 선거가 뭐 이렇나요?’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그나마 유지되고 다른 나라에 비해 발전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좋은 대통령이 있어서가 아니라 좋은 국민이 있기 때문이란 사실을 수십 년의 경험을 통해 국민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또 5년을 대통령이 아닌 국민이 나라를 지탱해 나가야 하는 것인가?

이제 제도적으로 뭔가 정비를 해야 할 시기가 왔다. 1980년대 부터 있어왔던 내각제 논의에 제대로 귀기울여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대통령제가 이런 식으로 더 이상 운영돼서는 안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이제 들기 시작한다.

대통령제의 폐해인지, 5년 단임제의 폐해인지 논의를 시작할 때다. 양파 까듯 드러나는 후보들의 흠결을 '사과하고, 사과하고 또 사과하는' 이번 선거전은 국민의 짜증을 유발하는 수준을 넘어 대한민국의 안위를 흔들만큼 심각한 문제다. 그들 중 하나가 국민 삶의 방향을 정하고, 경제정책 수립을 지휘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해 외국 수반을 만나고, 우리 군을 통수하는 절대적인 지위에 오른다는 것이 불안할 뿐 아니라 무섭기까지 하다.

현 대통령제의 대안을 찾을 시점이 온 것은 분명하다. 국민의 노력과 힘으로 버티기에는 이제 한계가 오고 있다. 염치가 있다면 후보들이 나서서 대안마련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지켜야 할 것이다. jumpjump@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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