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우리는 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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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인간은 흑백논리로 판단하기를 좋아하고, 모든 관계를 친구가 아니면 적으로 여긴다.’ 미국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의 말이다.

이분법은 쉽고 명확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세상 모든 것을 둘로 나누기를 좋아한다. 특히 개인의 성향을 규정하고자 할 때 자주 그런다. 예컨대 이런 말들.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모험을 추구하는 사람과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 그런 분류법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향된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내심 ‘나는 모험도 하고 싶고 안정되게 살고 싶기도 한데…’라고 생각하더라도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결국 모험적 성향이 99%인 사람이나 51%인 사람이나 같은 유형의 인간이 된다. 51%로 간신히 모험형 인간에 속한 사람은, 99%짜리 모험형 인간보다는 51%짜리 안정형 인간과 더 비슷한 점이 많겠지만, 둘 중 하나로 분류하자면 어쨌든 모험형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분법적 판단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대유행을 하고 있는 MBTI 성격 유형 테스트도 이분법적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그런 검사지에 ‘예, 아니오’로 답변하는 것을 무척이나 어렵게 느끼는 편이다. 예컨대 ‘나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놀이가 좋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치자. 동그라미를 쳐야할지 말아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상황에 따라 다르고 기분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렇게나 답해버린다. ‘모르겠다’라고 대답해도 되는 것이라면 아마 다수의 문항에 그렇게 답변했을 것이다.

물론 개인의 성향이나 성격 테스트에서 사용되는 이분법은 그리 경계할 문제가 아니다. 둘 중 어느 쪽을 택했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할 것도 아니고 나의 본질적인 정체성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떤 집단이 단 하나의 기준으로만 양분되는 일은 무척 위험할 수 있다. 고든 올포트의 말대로 ‘친구가 아니면 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정치적인 상황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정치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마저 나름의 기준을 세워 편가르기를 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학창 시절, 나 역시 이편과 저편의 선택을 강요당하곤 했다. 학교 폭력 문제가 지금처럼 민감한 사항으로 여겨지지 않던 때였으므로, 편을 나누어 싸우거나 제 편의 세력을 과시하는 일은 지금보다 훨씬 잦았고 노골적이었다. 어느 한쪽 편에 들어가는 일은 쉬웠다. 그저 그들의 말과 행동에 동조하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느 편도 되고 싶지 않았고, 그냥 한 개인으로 있고 싶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피곤한데 굳이 편을 갈라 싸움까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모두들 에너지가 넘쳤던 것일까?

혹은, 가둘 길 없는 화를 어디에든 퍼부어야 했기 때문일까?

2년 동안 팬데믹을 겪어 내면서 모두들 조금씩 날카로워지고 분노와 절망감이 누적되었다. 방역 때문에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고, 경제적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겼으며, 다른 한쪽에서는 방역 지침을 준수하지 않은 이들 때문에 집단 감염이 발생하고 가족을 잃기도 했다. 각자 자신의 상황이 버겁고 속상할 것이다. 그래선지 사람들은 자꾸 편을 갈라 서로에게 분노의 화살을 쏘아댄다. ‘왜 우리의 희생만 강요하나, 억울하다.’ ‘너희만 힘든가, 그만 징징대라.’

때로는 피로를 무릅쓰고 투쟁하는 정신이 필요한 순간도 있겠지만, 모두 다 힘든 상황에서 이분법으로 너와 나를 나누고 증오하며 배척하는 일은 서로를 상처 입히기만 할 뿐이다. 피투성이가 된 상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라. 그의 눈동자에,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비칠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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