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 ‘코앞’… 정확한 지침 없어 현장 대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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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부산항 신항·북항 9개 터미널 운영사와 부산항만공사 등 부산항 관련기관에 비상이 걸렸다. 컨테이너 화물로 가득한 부산항 신항 전경. 부산일보DB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 항만·해운·수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항만업계의 경우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터미널 운영사 대표의 사법처리는 물론, 터미널 운영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해운과 수산업계도 가이드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정확한 지침이 없어 현장에서는 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16일 부산항 부두 운영사 등에 따르면 오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지만 이에 대책은 아직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각 사업장 별로 안전에 대한 매뉴얼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구체적인 안전 의무 등에 대한 세부사항은 사업장이 용역 등을 통해 만들어야 한다. 사실상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은 사고가 일어나야만 구체적인 윤곽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고 발생 땐 부두 운영 차질
보름~한 달가량 중단될 수도
부두 근로자 고용 관계 복잡
선원 안전관계 책임도 모호
가이드 라인 마련 중인 업계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 거듭


과거 3년 간 부산항에서 사고로 숨진 근로자만 10명에 달하는데, 업계는 보완 대책 마련 없이 법이 시행되면 부두 운영의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전한다. 업계 측은 중대재해 발생 때 자칫 보름이나 한 달가량 부두 운영을 중단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아직 작업 중단 범위조차 명확하지 않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컨테이너 부두에는 운영사가 직접 계약한 근로자뿐 아니라 줄잡이, 검수, 선용품 공급, 방역 등을 위해 선사가 고용한 이들도 함께 일하고 있는데, 사실상 고용관계가 복잡해 관리의무를 어디까지 봐야 할지도 명확하지 않다. 게다가 하루 수 천 대의 트레일러가 출입하며 작업을 진행하는데, 이 모든 인원을 운영사가 관리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일부 부두에서는 법인 대표 처벌을 우려하며 경영 안정을 위해 대표를 2명으로 늘리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발생하면 법인과 대표가 강한 처벌을 받을 뿐 아니라 사고 조사를 위해 현장 작업을 일정 기간 중단해야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산항 신항 터미널 운영사 관계자는 “부두의 근로 여건을 고려할 때 안전관리가 쉽지 않다”며 “작업자도 다양한 곳에서 고용돼 부두에서 일하기 때문에 운영사는 권한은 없고 책임만 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정은 해운·수산업계도 마찬가지다. 해운의 경우 상선도 선사와 선원 공급업체가 따로 있어 권한과 책임의 분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원천과 하청의 소유과 경영이 분리가 돼 있어 누가 안전의무를 져야 할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다. 선원노련 등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어선원 사망자는 100명이 넘고 다치는 선원 숫자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해양수산부에서 업계와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취지와 내용을 알리는 설명회를 열었지만 현장의 준비상황은 여전히 미흡하다.

어선 충돌 등의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수산업계도 가이드 마련에 분주하다. 항만이나 해운과 달리 수산업계는 소규모의 직원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해당 법은 5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지만, 수산업의 경우 어민들은 제외하고 행정업무를 보는 직원은 사실상 2~3명이라 기존의 업무와 함께 안전 교육 및 대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형선망의 한 관계자는 “사실상 업계에서는 1호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며 “정확한 지침은 사고가 일어나야만 알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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