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아수라장의 삶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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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인간이 자신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다양한 상황에 대응한 생존방식이 담긴 이야기다. 인류가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도전에 대응하고, 모순과 충돌을 어떻게 화해시켰는지를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시공을 초월하여 인류가 꿈꾼 풍부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신화는 집단적으로 공유되면서 독특한 세계관과 정체성, 공동체적 이념과 윤리적 가치, 문화관을 전승한다.

고대 인도 힌두 신화는 제국주의 시대인 19세기 유럽 학자들에게 소개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3000년 이상을 거쳐 온 힌두 신화의 대표적인 개념이 ‘신과 아수라의 투쟁’이다. 인도 신화에서 아수라는 한쪽은 악의 얼굴이고 다른 쪽은 선의 얼굴을 갖고 있다. 악한 아수라들이 고행을 거쳐 신에게서 강한 능력을 받거나, 선한 아수라들이 신들의 속임수로 타락해 악이 되기도 한다. 선과 악은 상대적이어서 서구 문화권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았다. 불교가 힌두 신화를 수용하면서 육도팔부중의 하나로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인 싸움을 일삼는 포악한 귀신을 뜻하게 된다. 아수라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현장을 ‘아수라장’이라고 말한다.

신화 속의 아수라가 최근 한국 사회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대선을 50여 일 앞두고 여권 후보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건에 연루된 핵심 인물이나 제보자들의 의문의 죽음, 야권 후보 부인의 ‘7시간 녹취록 방송 및 허위 이력 스캔들’ 등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사건이 터지고 있다. 정치권은 이런 흐름에 편승해 자신들의 장점을 내세우지는 않고,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내 상처를 입히려는 아수라장을 연출하고 있다. 드라마 같은 이들 사건의 배후에는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 놓여 있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2016년 개봉한 영화 ‘아수라’가 6년 만에 넷플릭스에서 다시 조명받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인도 힌두 신화에서 최고의 가치는 아수라와 같은 선과 악의 싸움을 초월하여 생명을 안정화하고, 완전한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해탈이라고 한다. ‘이기는 게 내 편’이라는 이분법적인 권력 투쟁에 휩싸인 대한민국은 언제 아수라의 삶을 벗어날 수 있을까? 한국 정치권도 처참한 아수라의 전쟁이 아니라, 국민의 삶과 생명을 안정화하고 조화에 이르는 지혜의 싸움, 해탈로 가는 싸움을 벌이면 어떨까? 이런 싸움이라면 느긋하게 즐기며 바라볼 수 있을 듯하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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