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국제 뉴스 실종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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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대형 사건으로 얼룩진 2021년, 미디어 업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지난해 7월 어느 지상파 방송사가 일본 도쿄 하계올림픽 개막식 중계에서 터뜨린 사고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각국 선수단이 입장할 때 해당 국가를 소개하면서 1인당 GDP 액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과 더불어 대표 사진 하나를 올린 것이다.

문제는 이 사진이 대단히 부적절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를 소개할 때 1986년 체르노빌원전 폭발 사고 사진을 올려 전 세계 네티즌을 경악케 했다. 아이티에는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을 달았다. 마셜제도에 대해선 1200여 개 섬으로 구성됐다면서 ‘한때 미국의 핵실험장’이란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아마 이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이 해외 사정에 어두울 것으로 착각했을지는 모르나, 국내외에서 해당 중계 방송을 보고 비판하는 글이 쇄도했다.

국내 언론, 외신 건수 적고 자극적 보도
신문·방송 경영난에 해외 특파원 철수
높은 국격에 맞게 세계 추이 잘 짚어야
통신사의 제 역할·국제 소식 공급 중요

언뜻 보기에는 담당자의 무지와 부주의로 빚어진 방송 사고였다. 하지만 냉정히 돌이켜보면 이 사건은 실수나 사고라기보다는 방송 종사자의 평소 생각과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이 없고 한국의 국제 위상이 낮았던 시절이라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를 사고가 지금 와서 주목을 받게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사고 아닌 ‘사고’의 후유증이 더욱 뼈아프게 느껴진다.

지난해 한국은 무역 규모에서 세계 8위에 진입했다. 액수로는 연간 1조 달러가 넘는다. 대외 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이다 보니 해외의 온갖 사건 사고와 추이는 그대로 증폭되어 한국 경제에 더 큰 파장을 일으킨다. 해외 각지의 다양한 뉴스를 빠르게 전해 주고 그 맥락과 의미를 짚어 줄 수 있는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 언론에서는 국제 뉴스를 접하기가 어렵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외신은 주로 지진, 화재, 쿠데타, 전쟁 등 자극적인 사건뿐이고 그나마 단편적이고 건수도 적다. 특히 신문에서 외신 기사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도움이 되는 외신이 적어 독자가 읽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독자의 무관심 탓에 언론이 갈수록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가는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올림픽 중계에서 국가별 소개용으로 제시된 사진과 문구는 현재 한국인의 (그리고 언론의) 국제 감각과 지식수준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게다.

더욱 우려할 만한 추이는 국제 뉴스를 공급하는 토대가 점점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 주요 언론사마다 세계 주요국에 특파원을 상주시켜 직접 취재한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옛말일 뿐이다. 굳이 한국의 경제 규모나 국제적 위상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국내 언론의 해외 특파원 파견 지역과 인원 규모는 경악할 수준이다. 2020년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자료를 보면 유럽 전역에 파견된 국내 신문사 전체 특파원 수는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 각각 2명에 불과하다. 국제 지역 전문가로 장기간 종사하는 구조도 아니다 보니 취재의 전문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언론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이처럼 열악한 취재 환경이 조만간 개선될 것 같지도 않다.

국제 뉴스의 실종 사태를 보면서 통신사의 역할이 더욱 아쉽다. 통신사는 원래 일반 언론사가 취재하기 어려운 영역의 기사를 제공하기 위한 뉴스의 도매상으로 출발했다. 국제 뉴스는 통신사의 대표적인 담당 영역이다. 국내에서는 통신사의 이러한 중요성을 고려해 2003년 제정된 뉴스통신진흥법에 따라 <연합뉴스>를 국가 기간 통신사로 지정하고 매년 300억 원 정도의 거액을 국고에서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이러한 취지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뉴스의 도매상 역할에 충실해야 할 통신사는 갈수록 신문·방송사와 경쟁을 벌이는 소매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한국인의 주 뉴스 소비원인 포털상으로 보면 <연합뉴스> 기사는 일반 일간지와 차별성이 없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 통신사가 지난 10년간 기업 광고물 2000여 건을 기사로 포장해 포털에 올린 사실이 적발되어 포털에서 사실상 퇴출 조치됐다. 국고 지원을 받는 공적 기관이자 통신사의 본분을 벗어나 일반 사기업처럼 행동하고 있는 셈이다. 언론 전반의 국제 뉴스 부실은 그 징후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출근 후 책상에 앉거나 귀가한 후에는 습관적으로 포털과 뉴스 채널부터 켠다. 그런데 별 궁금하지도 않은 국내 정치인의 신변잡기 소식만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고 있다. 최근 일어난 국제적인 사건의 파급효과나 배경지식에 대한 갈증은 적어도 국내 언론 중에서는 해소할 곳이 없다. 참, 코로나19로 칩거하는 동안 해외 정보 갈증을 그나마 메워 준 게 하나 있기는 하다. 바로 TV 프로그램 ‘세계테마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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