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짙어지는 ‘사이버 폭력’… 부모-자녀 신뢰가 예방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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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를 받고 찾아간 생일파티. 알고 보니 다른 친구들은 1시간 일찍 모였다. 때늦은 짜장면을 먹는데 ‘나만 빼고’ 단체로 카톡 알람이 울린다. ‘나만 빼고’ 키득거리는 친구들. 영화 ‘우아한 거짓말’에 나오는 사이버폭력의 한 장면이다.

웹·모바일 이용 늘면서 범죄 노출 증가
언어폭력, 왕따에서 성범죄까지 등장
부모 역할 중요… 대화 통해 신뢰 쌓아야
저연령일 때부터 관계 형성이 효과적
모니터링·전문가 상담 등 조치 필요


■코로나로 커진 ‘사이버 위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자녀들의 온라인 활동도 급격히 늘었다. 온라인수업은 일상이 됐고, 외출이 줄어든 만큼 웹·모바일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부모는 아이들이 사이버폭력에 노출되지 않을까 근심이 늘 수밖에 없다. 6학년과 3학년 남매를 둔 김 모(부산 금정구) 씨는 “원래는 애들이 밖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했는데 작년부터 컴퓨터나 패드를 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며 “간혹 첫째가 게임을 하다가 험악한 말을 해 깜짝 놀랄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의 우려는 현실화하고 있다. 교육부의 학교폭력 실태조사(초4~고3)를 보면 사이버폭력 피해 비율은 2019년 8.9%에서 2020년 12.3%로 3.4%포인트(P)나 증가했다. ‘중 > 고 > 초’ 순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코로나19로 온라인수업이 확대된 2020년의 중학생 사이버폭력 피해 비율은 18.1%에 달했다.

푸른나무재단의 지난해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이버폭력 유형 중 사이버 언어폭력(22.5%)이 가장 많았고, 사이버 명예회손(15.7%), 사이버 따돌림(8.3%), 개인정보 유출(8.1%), 사이버 성폭력(7.8%)이 뒤를 이었다.



■재미와 폭력 사이 ‘교묘하게’

SNS를 비롯한 온라인 활동이 늘면서 학생들이 겪는 사이버폭력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이 사이버폭력 예방프로그램 운영 실태와 요구를 파악하기 위해 진행한 집단심층면접에서 교사들은 SNS를 통한 욕과 험담, 협박, 악플 등 언어폭력을 가장 빈번한 유형으로 꼽았다.

특정 학생의 표정이나 동작을 촬영해 친구들끼리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기도 하고, 여학생들 사이에선 프로필 상태메시지에 특정 학생 이름만 빼고 나머지 친구들의 이름을 나열하거나, 자기들끼리만 노는 사진을 올리는 식으로 교묘하게 따돌리기도 한다.

심한 경우 자신 혹은 타인의 신체 일부를 합성하는 성폭력 범죄로 이어지고, 강요와 협박으로 아이디를 도용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사이버 공간은 물리적 제약이 없고 어른의 개입 가능성이 적어 오프라인보다 손쉽게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 점도 사이버폭력을 부추기는 특징이다.

A 교사는 “피해를 본 학생이 가해를 하기도 하고, 가해 학생이 피해를 입기도 한다”며 “한 학생이 가해자 심의를 받으면서 피해자 심의를 받는 경우도 많아, 폭력의 원인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학교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부모가 적극 ‘모니터링’ 해야

학생들은 재미와 폭력의 경계를 오가면서 사이버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청소년 상담심리 전문가들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예방교육도 필요하지만, 부모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녀와 일상적인 대화를 많이 하면서 신뢰관계를 쌓아두면 사이버폭력에 좀 더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애들이 게임에서 날 안 끼워줘”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더 자세히 물어보면서 이상 징후를 발견해내는 식이다.

PC를 거실 같은 공개된 공간에 둬, 자녀의 온라인 활동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자녀의 SNS를 비롯한 온라인 활동을 ‘합의 하에’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 브라우저의 즐겨찾기 목록과 이용기록, 포털사이트 검색기록 등을 살피고,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게시판을 알아두는 것도 유용하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양미진 박사는 “아이와 얘기를 해서 부모가 어느 정도까지는 온라인상의 내용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켜야 한다”며 “사이버폭력에 노출되기 시작하는 초등학생, 저연령일 때부터 이 같은 관계를 형성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만약, 자녀가 사이버폭력의 피해를 받았다면 가해자와 직접 접촉하기보다는 먼저 담임교사와 학교에 알려 상담을 진행하고, 전문상담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사건에 대해 신중하게 고려한 뒤 신고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학교나 전문기관을 통해 관련 절차를 진행하면 된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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