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쌓은 ‘마음의 탑’ 앵글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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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은 사진전 ‘227명의 사람들’ 4월 2일까지 BMW 포토 스페이스

이예은 작가는 일상 속 물건을 쌓아 사람 사이의 관계를 사진 속에 담아낸다.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마음쌓기 #5’ ‘131개의 교점’ ‘공간쌓기 #2’. 이예은 제공

도자기 화병, 화채그릇, 빈티지 찻잔, 코끼리 인형….

여러 사물로 아슬아슬 탑을 쌓아 올린다. 조심조심 뒤로 물러나 카메라 뒤에 선다. 그러다 탑이 무너지면 다시 쌓는다. 사진작가 이예은이 셔터 한 번을 누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긴 이유다. 이예은 작가가 마음과 공간을 쌓아서 만든 사진을 부산 해운대구 중동 BMW 포토 스페이스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작가의 첫 개인전 ‘227명의 사람들’은 4월 2일까지 열린다.

마음쌓기와 공간쌓기로 구성
화병·찻잔·호미·코끼리인형 등
주변 물건들로 돌탑처럼 쌓아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에 전시
균형 맞춰 일하는 ‘인간관계’ 상징

전시는 마음쌓기와 공간쌓기 두 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호미 손잡이에 플라스틱 공깃돌 다섯 개를 올리고, 꼭대기에 배드민턴 공을 세웠다. 큰 실타래 위에 8개의 작은 실타래가 균형을 잡고 버틴다. 이렇게 공들여 탑을 쌓은 이유는 뭘까? 작가는 돌탑 이야기를 꺼냈다.

“산에 가면 누가 언제부터 쌓았는지 모를 돌탑들이 있죠.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하나씩 쌓아 올린 돌탑이 사람의 관계를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평소 사람 이야기를 듣거나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로 작업해 온 이 작가. 그는 코로나 시대에 위로가 되는 사진을 제작하고 싶었다.

“평범한 돌을 쌓은 탑에 마음이 모여 의미가 생기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애착하는 물건으로 탑을 쌓고 거기에 담긴 마음이나 힘을 보는 사람에게 전달하려 했어요.” ‘마음쌓기’ 작업이다. 작가는 주변 사람에게 물건을 빌려 탑을 쌓았다. 호미·배드민턴 공 같은 취미용 물건부터 혼수로 장만한 다기·뮤지컬을 보고 반해 구입한 호두까기인형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것들이 ‘마음 탑’의 재료가 됐다.

2020년 마음쌓기 작업을 발표한 작가는 주한스위스대사관의 책 출판·전시 프로젝트 참가를 계기로 ‘공간쌓기’ 작업에 들어간다. 작가는 1년간 대사관을 드나들며 직원들의 물건을 모아 대사관 내 여러 공간에 탑을 쌓고 사진을 찍었다. “보통 어떤 공간을 볼 때 그 공간이 가지는 힘을 보는데 저에게는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어요.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의 물건을 쌓아서 사람들의 관계와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조각품, 캡슐커피, 지압볼, 업무용 이어폰, 물병, 클립, 카드지갑, 볼펜, 줄자, 여행지에서 주워온 조약돌 등으로 구성된 탑이 사무실, 보일러실, 주차장, 카페테리아 등 대사관 내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공간에 만들어졌다. 작가는 “3층에서 탑을 쌓다 떨어진 클립을 찾아 지하까지 내려간 적도 있다”며 웃었다. 공간쌓기에는 전시장이 위치한 BMW 미니빌딩과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찍은 사진도 등장한다.

이 작가는 탑을 쌓을 때 균형 맞추기에 집중한다. 둥근 테이프나 날카로운 칼까지 모양이 제각각인 물건들을 균형 맞추기만으로 탑처럼 쌓은 모습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이 작가의 탑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균형을 맞춰 일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하나씩 쌓으면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 2~3개를 통으로 잡아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탑을 쌓으면서 ‘그래 인간관계는 이렇게 힘든 거야’ 말하기도 하죠.”

전시장 안쪽에 2019년 작 ‘131개의 교점’이 설치되어 있다. 할머니, 외국인 노동자, 물류창고에서 일하며 만난 이모들과 함께한 작업을 마무리하는 의미를 가진 작품이다. 이 작업에 참여한 사람 131명과 마음쌓기·공간쌓기에 물건을 제공해 준 사람들을 모두 합치면 전시 제목에 나오는 227명이 된다.

이 작가는 지난해 노동의 반복성에 대한 사유를 12시간 노 젓기로 표현한 영상 작품 ‘단순업무, 초보가능’을 제작했다. “물류창고가 일은 힘든데 돈이 바로 나오거든요. 9시간을 일하러 간 제가 12시간을 일하고 있는 걸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어요. 하염없이 일을 하는 것이 꼭 묶인 배 위에서 계속 노를 젓는 느낌이죠. 그래서 요즘은 노동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공간쌓기는 연이 닿는 곳이 있으면 그때 또 작업을 이어갈 것 같습니다.” 051-792-1630.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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