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42. 비만이다? 염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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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나는 건강이다.’

이 문장, 누가 봐도 어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아래 문장들은 어떨까.

‘비만인 사람은 음식을 많이 먹어 각종 대사 산물이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콩팥이 일을 많이 해야 한다./비만인 사람은 콩팥 속 사구체가 비정상적으로 커진 경우가 많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 탈이 없고 튼튼함. 또는 그런 상태’를 가리키는 명사인 ‘건강’과 마찬가지로, ‘비만’은 살이 쪄서 몸이 뚱뚱한 상태를 표현하는 명사. 그러니 ‘건강이다’와 마찬가지로, ‘비만이다’도 어색한 표현이 된다. 흔히들 명사에 서술격 조사 ‘-이다’를 붙여서 서술어처럼 쓰지만, 동작성이 떨어지는 명사에 붙이면 어색해진다. 이럴 때는 형용사 ‘비만하다’를 써야 어색해지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우리 집 앞 땅은 아주 비옥이다’나 ‘오늘은 하는 일마다 잘돼서 아주 행복이다’에서도 ‘명사+-이다’꼴을 형용사(명사+-하다), 즉 ‘비옥하다/행복하다’로 바꾸어야 하는 것.

‘나는 건강이다’가 어색한 이유를 다르게 설명할 수도 있다. ‘①은 ②이다’라는 문장을 보자면 ①과 ②는 동격, 즉 ‘①=②’가 된다. 그래서 ‘그분은 김철수다’나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그분=김철수’ ‘나=자연인’이 되는 것. 하지만 ‘나=건강’ ‘나=비만’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건강이다’나 ‘나는 비만이다’라는 문장이 어색한 것이다. 아래 기사에도 어색한 말이 보인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22일 건강가정기본법 개정과 관련, “동성혼을 염두하고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바로 ‘염두하고’라는 말. ‘염두하다’라는 우리말은 없기 때문이다. ‘책상하다’나 ‘달걀하다’가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 무슨 말이냐 하면, 일단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보자.

*-하다: (일부 명사 뒤에 붙어)동사를 만드는 접미사.(공부하다./생각하다./사랑하다./빨래하다.)

여기서 ‘일부 명사’는 동작성이 있는 명사를 가리킨다. ‘공부, 생각, 사랑, 빨래’에는 움직임이 들어 있는 것. 반면 ‘책상, 달걀’에는 그런 게 없어서 ‘책상하다’나 ‘달걀하다’가 어색한 것이다.

해서, 염두, 즉 ‘마음속’에는 어떤 동작성도 없기 때문에 ‘-하다’ 접미사가 붙으면 어색해지는 것. ‘염두하다’는 ‘염두에 두다’로 써야 한다.(그렇게 보면 요즘 부쩍 자주 보이는 ‘애정하다’는, 어색하긴 해도 쓸 수 없는 말은 아니다.) 아래는 어느 신문 고정란 제목인데, 이게 왜 어색한지는 이제 쉽게 아실 터.

‘김금희의 식물 하는 마음.’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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