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생산·유통·소비 환경에 새로운 바람 일으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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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통영 멸치권현망수협 조합장

훤칠한 키, 앳된 얼굴, 상기된 표정 그리고 말끔한 슈트 차림은 갓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신입사원’ 느낌이다. 만 39세. 얼핏 적잖은 나이로 보이지만 업계 평균 연령이 60세를 훌쩍 넘기는 현실을 고려하면 ‘청년’보다 ‘청소년’에 가깝다. 그런 그가 설립 100년이 넘은 수산업 단체의 수장이 됐다. 국내산 마른 멸치 유통량의 60%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경남 통영의 멸치권현망수협 박성호 조합장 이야기다.

박 조합장은 지난 14일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24 대 23’, 단 한 표 차로 신승을 거뒀다. 그는 “생산, 유통, 소비 모든 사회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도 그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며 “안정과 도전의 갈림길에서 새 길을 찾길 바라는 조합원들의 바람이 반영된 결과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궐선거서 전국 ‘현역 최연소’ 당선
조부·부친 이어 ‘수협 3대 조합장’
선배들 고견 들으며 수산업 도약 모색

박 조합장의 당선으로 대한민국 수협사에 두 가지 의미 있는 이정표가 세워졌다. 첫째는 ‘현역 최연소’다. 수협중앙회 산하 91개 회원 조합을 통틀어 그가 가장 젊다. 박 조합장 바로 위가 경북 영덕북부수협 김영복(47) 조합장이다. 역대 수협장으로 범위를 넓히면 이종구 전 수협중앙회장에 이어 두 번째다. 이 전 회장은 36세 때 진해수협 조합장이 됐다.

또 하나 주목할 요소는 수협 최초로 ‘3대 조합장’이 탄생한 것이다. 박 조합장의 부친인 박종식 전 수협중앙회장은 거제수협 7~8대 조합장을 지냈다. 거제수협은 국내 수산업협동조합의 효시로 초대 조합장이 바로 박 전 회장의 아버지이자 박 조합장의 할아버지인 고 박명길(1~4대·1972~1984년 재임) 씨다.

멸치잡이는 할아버지 때 시작해 박 조합장까지, 80년 넘게 이어온 가업이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2009년 현업에 뛰어든 박 조합장은 “10년 넘게 업에 종사했지만, 상대적으로 너무 어리다 보니 출마를 결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면서 “그래도 계속 기존 방식을 답습해선 살아남기 힘들다는 위기의식에 공감해 생각보다 많은 분이 (출마를)권유해 주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린 만큼 상대보다 먼저 고개를 숙일 수 있다. 이건 큰 장점이다. 따끔한 질책에 먼저 귀 기울이고, 원로와 선배들 고견을 적극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열정과 패기로 똘똘 뭉친 그이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준법 조업한 어민조차 범법자로 내모는 ‘띠포리·청어’ 혼획 금지, 산지 가격은 내려가는데 소비자 가격은 오르는 불합리한 유통 구조, 오는 7월 시범 도입될 TAC(총허용어회량) 등 당장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

그는 “선단 세력이 크고, 매출이 높다 보니 같은 어민인데 기업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 때문에 이런저런 법과 제도가 어민들을 옥죈다”고 진단했다. 이어 “어민이 바라는 건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조업하고, 열심히 잡은 고기가 제값을 받아 고생한 만큼 보답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며 “어민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고, 문제를 풀 실마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작정”이라고 했다.

문제는 시간이다. 당장 주어진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 선거가 열리는 내년 3월 20일까지, 1년 3개월 정도 남았다.

박 조합장은 “빠듯하다”면서도 “협동조합은 혼자 하기 힘든 어려운 일을 모두의 힘으로 극복하려고 만든 조직이다. 구성원 모두가 하나로 뭉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며 “네 편, 내 편 가르지 않고 모든 사람과 소통하며 최선의 판단과 좋은 결정을 내리겠다”고 강조했다.

글·사진=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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